[고졸 성공신화 우리가 열어요] 14·<끝>. 에필로그

[편집자 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역 특유의 학력 선호로 빚어지는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중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지원 정책들을 펴고 있다.
뉴스1제주는 '고졸 성공신화 우리가 열어요'를 주제로 14회에 걸쳐 이 같은 제주도교육청의 특성화고 지원 정책과 특성화고별 운영 방향,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 성공 사례 등을 소개한다.
 

“대학을 꼭 가야 하나요? 살면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가려고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부터 시작해 제주중앙고, 한국뷰티고, 한림공고, 제주고, 서귀포산업과학고에 이르기까지 인터뷰에 응해준 특성화고 학생들은 모두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 보다 “너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라는 질문이 만연한 고교 풍토 속에서 이들은 “나는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남들 다 가니까 가는 대학’이 아닌 ‘진짜 내 삶’을 쫓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당당함이다.

특성화고는 이들에게 “공부해라”가 아니라 “어떤 공부를 해볼래?”라고 질문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학생들 스스로 적성과 흥미를 찾게 한 뒤 진로를 정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교내 동아리활동이다. 비슷한 분야의 꿈을 꾸는 또래들끼리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자격증 취득 등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도 적극 활용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인턴십에 합격한 제주중앙고 3학년 박예나양(19)은 “은행이나 보험공단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은행텔러’라는 취업동아리 활동을 했다”며 “경제와 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가 모은 정보들을 공유해 유익했다”고 말했다.

인터뷰한 학생들 모두가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신을 갖고 입학한 학생은 드물었다. 주변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주저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우리은행에 합격한 제주여상 3학년 이다현양(19)은 “처음엔 공부를 못하니까 특성화고에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보란 듯이 공부해서 가고 싶은 직장에 취업하니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며 “어디에서든 자기하기 나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양의 경우 ‘선 취업 후 진학’ 제도를 이용해 1~2년 뒤 대학 금융학과에 진학해 부족한 부분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지정 면세점에 취직한 한국뷰티고 3학년 양하린양(19)과 제주경마장에 취직한 서귀포산과고 3학년 김영훈군(19)은 대학 진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양양과 김군은 “단순히 추억을 쌓으려고 대학생활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고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 것”이라면서 “지금 중요한 건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반드시 스무살이라는 나이에 맞춰서 가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할 때 언제든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대학이고, 배움의 장은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공고하게만 여겨졌던 대학 입시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제주고에서 관광조리를 전공한 고정욱군(19)은 “아마 일반고에 진학했더라면 나도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공부가 하기 싫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학교에서의 시간도, 방과 후의 시간도 모두 내 꿈을 이루는데 활용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조리 관련 자격증을 6개나 취득한 고군은 그랜드메르호텔제주 요리사로 취직했으며, 10년 후쯤에는 본인 이름의 레스토랑을 차려 ‘미슐랭 가이드’ 별 3개를 받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제주고 출신으로 중문하얏트리젠트 요리사로 취직해 후배들의 멘토가 돼 주고 있는 김대근씨(20)는 고3 시절 해외 음식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다녀온 호주 글로벌 인턴십을 특별한 경험으로 꼽았다.

김씨는 “또래 아이들이 공부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나는 호주에 가서 어학 공부도 하고 개인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우며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며 “특성화고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기회였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학교로 만들겠다는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의 특성화고 활성화 방향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한림공고에서 건축을 전공해 도일건설㈜에 취직한 박시용군(19)은 “중 3때는 남들처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목표가 생기니 막연했던 삶이 가슴 떨리는 미래로 바뀌게 됐다”며 “나중에는 건축 현장을 총 지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특성화고가 당초 설립 목적에 맞게 특정분야의 인재와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막연했던 10대들의 삶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꿈꾸는 내일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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