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2. 이주민이 제주를 소비하는 방식
노송이 레인보우게스트하우스 대표·안주희 책방 라이킷 대표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여기 ‘진짜 제주’를 맛본 이들이 있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관광지로 향하느라 지나쳐 버리고 마는 풍경들 속에서 유유자적 뒷짐을 지고 거니는 동갑내기 친구 노송이(35·여·제주시 화북동)·안주희씨(35·여·제주시 일도1동)다.

이들은 2011년 제주시내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손님으로 만나 이듬해 아예 짐을 싸들고 내려와 같은 제주도민이 됐다.

노씨는 제주에서 가장 흔하다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안씨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책방 주인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에 가고, 오름에 오르고 싶으면 오름에 가는 게 당연해져버린 일상이지만, 해가 갈수록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발걸음을 돌린 이유는 다름 아닌 ‘이주민들’ 때문이다.

◇ 육지의 삶을 옮겨오려고 하는 사람들
 

지난 20일 오후 안씨가 제주시 원도심에 운영하고 있는 책방 라이킷(LIKE IT)에서 만난 이들은 변해가는 제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 노씨는 “제주에 내려온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올레길을 걷다가 ‘우와 이런 풍경이 있다니’하고 감탄해서 이주를 결심하게 된 경우들이 많다”며 “그런데 문제는 육지에서 살던 방식과 똑같은 삶의 방식으로 여기(제주)를 소비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씨는 “본인들이 좋아서 온 제주를 스스로 망가뜨리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며 “제주의 농가주택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에 반했던 사람들이 막상 오면 땅을 사고 화려한 2층 집을 지어 동네 풍경을 망쳐버린다”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그들은 본인들이 마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은 해봤는지 모르겠다”며 “바라보기만 해도 아까운 제주인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흉측해져가는 걸 지켜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하소연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안씨는 “제주에 사는 게 멋있게 느껴지니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본인이 여기서 뭘 좋아했는지를 까먹어버린 것 같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씨와 안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장소는 서귀포시의 어느 해안을 따라 펼쳐진 절벽 풍경이다. 2년여 전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한 듯 보였다.

안씨는 “글쎄 절벽 앞에 큰 건물이 떡하니 들어와 있더라”며 “더 가관인 건 그 건물을 지은 사람도 그게 흉측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날 책방을 찾은 중년여성이 알고 보니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부인이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안씨는 “그 분이 먼저 해외에서 건축공부를 하고 온 남편을 자랑해서 알게 됐다”며 “그 건물이 흉측하지 않냐고 내게 묻길래 대뜸 그렇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그 분이 ‘우리가 가만히 놔둬도 몫이 좋기 때문에 누군가는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야말로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제 더 이상 그 절벽에 가지 않는다는 노씨는 “땅만 샀는데 뷰까지 소유하게 되니 얼마나 좋겠느냐”며 “이제 다른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절경을 더이상 볼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더불어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를 언급하며 “해질 무렵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바다 앞에 늘어선 높은 건물들 때문에 그 하얗고 예쁜 모래사장에 그늘이 지더라”며 “건물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대신 바깥에서 본인 건물을 한 번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TV 속 제주 이주민 1세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주민들이 옮겨온 육지의 소비방식이 해치는 건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노씨는 “육지에서의 삶을 답습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경관 훼손뿐만이 아니다”며 “집값을 오르게 하고 마을 공동체를 와해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말한 것이다.

안씨는 “나는 온전한 집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다달이 머무를 곳만 있으면 됐는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제주에 살 수 없게 됐다”며 “제주 집값이 서울과 맞먹는다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노씨는 “같은 이주민들끼리 서로 내몰기도 하고 전세로 왔다가 부동산 가격이 높아져서 쫓겨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어디 게하가 문을 닫았네, 또 주인이 바뀌었네 등의 이야기가 요즘 많이 들리는데 대부분 육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노씨는 급증한 부동산 값도 문제지만 계획 없이 무작정 제주행을 택하는 것 또한 고생길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노씨는 “제주에 오면 일자리가 많이 없어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게하나 카페”라며 “그런데 그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외 권의 게하의 경우 손님을 한 명도 받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노씨는 이어 “어떤 게하 사장은 아침부터 손님 내보내고 청소 하고 다시 손님 받고 하다가 종일 하늘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 적도 있다”며 “진짜로 제주에서 오래 잘 살아보고 싶다면 차근차근 계획을 한 뒤에 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야기 도중 노씨는 문득 “오래 전 TV나 잡지를 통해 숱하게 보도됐던 ‘제주 이주 1세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라고 궁금증을 던졌다.

노씨는 “결국 잘 정착해서 사는 그들을 동경해서 이주해 온 경우가 많은데 과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내가 제주를 여행할 시절 다녔던 게하의 사장이 육지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다”며 씁쓸해했다.

◇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만한 애정
 

가만히 생각에 젖은 노씨는 “제주도는 지금까지 운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원래 있던 길에 올레라는 이름 하나 붙였을 뿐인데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올레길이 생긴 지 10년인데 제주가 변하는데 가장 앞장 선 게 이주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너무 한꺼번에 몰려오다보니 부작용도 많이 생겼다. 이제는 걸어온 길을 찬찬히 돌아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편한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제주는 그냥 여행지로만 오는 게 좋을 것”이라며 “조금 추운 집에 살아도 괜찮고,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서 비싼 가스비를 내도 괜찮다면 내려와도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안씨는 “곰팡이와 맨날 싸울 수 있고, 택배가 안와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하다”며 “육지에 살 때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고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게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제주가 좋다”고 말했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제주가 좋다는 안씨는 “나는 원래 집순이인데 제주에서는 쉬는 날 꼭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다”면서 “바다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책방 주인이 아닌 해녀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몇 시간씩 고생하지 않아도 황홀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제주가 좋다는 노씨는 “불편한 게 많지만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식은 여기를 망칠 수도 있다”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분명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이어 “지금 사는 집이 내 나이랑 똑같은 시골집인데 나중에 집을 짓더라도 내 집을 동네에서 돋보이는 집으로 짓진 않을 것”이라며 “높은 집을 지으면 나보다 오래 살던 옆집은 그늘이 질 거 아니겠느냐. 나 혼자 좋은 거 독점하지 않는 게 내가 제주를 아끼는 방식”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편 이들은 2015년 제주의 숨은 여행지 등을 담은 '깐깐한 제주 언니들이 꼼꼼히 알려주는 진짜 제주'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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