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1~2학년 ‘제주 한놀주니어’ 15명 활동
관광지 제주 한복 프로그램 필요…고정관념 없애야

“오늘 무슨 날인가요?”

한복을 입고 제주 곳곳을 누비는 청소년들이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저 한복이 좋아서 한복 알리기에 나선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지정 비영리단체 한복놀이단 산하의 청소년 동아리 ‘한놀주니어’ 회원들이다.

지난 2015년 창단된 한놀주니어는 제주도내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구성됐으며, 현재 2기에는 15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옷인 한복을 알리려는 마음 하나로 뭉친 한놀주니어는 “왜 특별한 날에만 한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한복을 다시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걷고 있는 제주 청소년들이 설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고유의 멋을 빛내고 있다.

◇ “관광지 제주에 한복 알리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어요”
 

한놀주니어 2기 단장을 맡고 있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 심규희양(18)은 제주 왕벚꽃축제에서 1기 선배들이 한복을 입고 거니는 모습을 보고 한복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1학년 안혜림양(17)과 한림고 2학년 김선영양(18), 제주고 2학년 문원영양(18) 역시 한복 예찬에 빠졌다.

안양의 경우에는 지난 여름방학 서울 경복궁에서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한복에 반하게 됐다.

안양은 “제주에서는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경복궁에 가니 종종 볼 수 있었다”며 “한복에 꽂혀서 제주에 오자마자 한복 관련 단체를 찾았고 한놀주니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한놀주니어의 시작도 ‘왜 제주에는 한복을 알릴 수 있는 장소나 단체가 없을까?’라는 물음에서부터였다.

1기 단장을 맡았던 이은진양(19)은 해마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제주에서 우리 옷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제주 한놀주니어’를 꾸리게 됐다.

회원 모집을 시작한 이후 30~40명까지 모이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본인 한복이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구입을 하려고 했지만 수십만 원씩 하는 한복을 학생들 형편에 사기도 어려웠고, 매 활동 때마다 대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이양은 한복전문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등에 동아리의 취지를 알리기 시작했고, 대여 한복 중 낡은 것들이라도 기증해줄 수 없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한복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간절한 외침에 응답한 게 바로 김숙자씨(60·여)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참멋과 한복나라’라는 한복맞춤·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우연히 한놀주니어의 게시글을 보고 곧바로 이양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한복을 알린다고 해서 참 예쁜 아이들이구나 생각했는데 마침 제주 친구들이라서 선뜻 연락을 하게 됐다”며 “대여를 했던 옷들이지만 전혀 낡지 않고 드라이를 해놓은 것들을 추려서 한 벌당 5만원씩을 받고 건네줬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사실 돈을 받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들이 한복을 소중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약간이라도 받기로 한 것”이라며 “한복을 팔고 있는 나도 잊혀져가는 한복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막막한데 아이들이 나서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에 하루라도 한복 입는 날로 정하면 각인이라도 될 텐데 어른들은 잊혀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요즘에는 편한 한복들도 많이 있으니 홍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기특한 마음에 한복에 어울리는 신발과 버선까지 무료로 내어준 김씨에 대해 한놀주니어는 “참 고마운 분”이라고 치켜세우며 한복 알리기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을 다짐했다.

문양은 “어릴 적 명절 때마다 엄마가 한복을 입혀줬는데 까칠까칠한 게 싫어서 다 벗어던졌다”며 “그런데 지금은 개량한복으로 나와서 입기가 수월하다”고 달라진 한복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 옷에 비해 한복이 더 좋다는 김양은 “사실 몸매 보완을 해주는데 이만한 옷이 없다”며 “푸른 녹차 밭에서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있으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신이 나 말했다.

심양은 “전통한복은 솔직히 입을 것이 많아 번거롭지만 개량한복이나 생활한복은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며 “요즘에는 무릎까지 오는 생활한복이 나와 육지에서는 꽤 많이 입는다는데 제주에서는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는 관광지이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더 많이 알릴 수 있는데 그런 노력들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관덕정이나 민속촌에 가도 한복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한복을 입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복을 대여해주는 한국민손촉이나 한복을 입으면 무료로 입장시켜주는 경복궁처럼 제주에서도 한복 입기를 독려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명실공히 ‘제주 한복 홍보대사’…“한복은 하나의 놀이”
 

매달 두 차례 활동하는 한놀주니어가 주로 향하는 곳은 제주도내 축제장이나 유명 관광지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한복 홍보 활동을 펼치기 위함이다.

제주시 이도1동 청소년 문화의집에 거점을 둔 이들은 일단 모여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동할 지를 정한 뒤 플래카드 등 홍보물품을 직접 제작한다.

한놀주니어 소개부터 시작해 ‘한복, 그것이 알고 싶다’, ‘한복 퀴즈’ 등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고 참여할 수 있는 플래카드를 제작한 뒤에는 바깥으로 나간다.

매달 열리는 곳곳의 축제장부터 시작해 오설록, 관덕정, 돌문화공원 등 관광지는 물론 사람들이 붐비는 제주시청 일대까지 이 아이들의 발길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는 시민들을 상대로 한복 대여 행사를 한 적도 있다.

심양은 “1기 선배들이 주축이 돼서 진행한 행사였는데 천막부스를 차리고 직접 한복을 입어보게 한 뒤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드렸다”며 “사진과 함께 한복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해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양은 “그때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연두색 한복을 입으셨는데 너무너무 예쁘다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게 생각난다”며 “오랜만에 입은 한복에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고 들뜬 어조로 말했다.

문양은 “사실 우리가 한복을 입고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매번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며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복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보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줄 때면 애국심을 느끼곤 한다는 한놀주니어는 나라사랑동아리로 선정돼 제주시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

청소년 문화의집에서 동아리 지도교사를 맡고 있는 조순이씨(47·여)는 “많지는 않지만 지원금으로 아이들이 필요한 물품을 사고 타 동아리와 연합활동을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공모사업 등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씨는 “지원 예산의 경우 정해진 항목대로만 써야 해서 아이들이 활동하다 배고플 때 간식을 사먹을 수도 없다”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지원 예산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복을 알리겠다며 행사를 기획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어른들도 한복을 입으면 쑥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해줘서 참 고맙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씨는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기 위해 어떤 점들이 보완돼야 하는 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들이 직접 한복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볼 생각”이라며 “재능기부 등을 통해 디자이너를 섭외할 수 있는 지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조씨의 말에 신이 난 아이들은 “내가 만든 한복을 입고 길거리를 거닐면 정말 좋겠다”며 “이제 우리에게 한복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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