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우연찮게 벤처1세대에 속하는 이재웅 ‘소풍’ 대표를 만나 커피 한잔을 함께했다. 지금은 카카오에 통합되어 버렸지만 그는 20여 년 전 ‘다음(daum)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하여 한국 사회에 'IT벤처 충격'을 선도했던 사람이다.

그는 3~4년 전만 해도 대학생들이 차지해야 할 일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빼앗아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내용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제목으로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망적인 얘기를 해줄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도저히 대학생에게 겁과 비관적 전망을 주는 얘기를 할 용기가 없어 자제하기로 했단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 생체공학기술 등 최첨단 기술이 융합하여 일으킬 산업변화, 이름 하여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한 일자리 붕괴를 일찌감치 비관적으로 인지하였다. 그가 말하는 일자리 붕괴는 두 방향에서 무시무시하다. 첫째, 사람이 수행하는 단순노동은 물론 전문분야 일들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뺏어감으로써 기존의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둘째,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분야의 속성상 첨단기술을 개발하거나 활용하는 소수의 승자가 부를 독점하게 되면서 부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와 부가 소수의 몫이 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양질의 청년 일자리 대량 창출이 어려워진다.

지금 그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회사 모양을 잡아가도록 공간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소위 ‘인큐베이팅 기업’을 운영하는 한편, 공유경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IT혁명의 큰 수혜자였고 ‘다음’ 창업 전 프랑스에서 인지과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만큼 제4차 산업혁명의 선봉에 설 만도 한데, 그 대안적 사업 방향을 찾는 것은 왜일까. 감당하기 어려운 기술혁신의 물결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비인간적 기술혁신을 우회하고 싶어서였을까. 그의 견해는 너무 비관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청년 일자리의 혼란스러운 미래를 감지하게 된다.

작년 여름부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다보스포럼 창시자 클라우스 슈바브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이 여러 권씩 포개져 꽂혀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요즘 지식인 사회의 유행어다. 정치인, 학자, 언론인, 고위 공직자들이 툭하면 제4차 산업혁명을 들먹인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대토령출마 포기를 선언하기 전까지 슈바브 회장을 만났고 ‘제4차 산업혁명’ 책도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녔다. 탄핵소추로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제4차 산업혁명’을 읽는다고 측근들이 기자들에게 흘릴 정도였으니.

‘제4차 산업혁명’은 작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의 주제였고 포럼이 끝난 후 같은 이름으로 슈바브가 책을 펴냈다. 세계의 정치 경제 분야 엘리트 3000명이 모이는 다보스포럼이 갖는 파급력은 크지만 일반 한국인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개념이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작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에서 4대1로 대승을 거두면서 제4차산업혁명 개념이 한국 사회에 퍼지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세돌이 이긴 한판을 두고 말이 많지만, 프로그램의 조작 없이는 다시 인간 바둑기사가 알파고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데 대부분 사람들이 동조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클라우스 슈바브는 산업발전의 혁명적 변화를 4단계로 구분한다. 제1차 산업혁명은 수력과 증기의 힘을 써서 생산을 기계화했고,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힘을 써서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냈으며, 제3차 산업혁명은 전자공학과 정보기술(IT)을 사용하여 생산을 자동화하였다. 지금 진행 중인 제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 전자공학, 생물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첨단기술의 융합이 특징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인쇄술, 나노기술, 생명공학, 소재과학, 에너지저장기술, 양자컴퓨터와 같은 분야에서 떠오르는 기술 도약에 의해 증진될 것이라고 슈바브는 점치고 있다. 이런 첨단기술의 소비적 측면만을 놓고 보면 인류 앞에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러나 종합적인 산업측면에서 보면 소득불평등과 일자리 붕괴라는 무시무시한 미래를 예상하게 만든다. 제4차산업혁명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21세기를 살아갈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업자 문제는 전에 없이 심각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연간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자 100만 명, 청년실업률 10%’를 안고 2017년이 시작됐다. 최근 조선 등 제조업의 불황으로 대량해고가 이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판에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일자리 문제는 가늠하기 어렵게 불확실해질 것이 아닌가.

최근 공개된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의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작년 국내 인공지능 및 로봇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25년 국내 취업자 1,630만 명의 일자리를 AI와 로봇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일자리 약 67%가 기계에 의해 대치될 수 있다는 황당한 얘기다. 그러나 기술발전에는 한때 황당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일까. 잠재적 대통령 후보들이 ‘제4차산업혁명’을 일자리 문제와 연계하여 얘기하기 시작했다. 출마를 포기했지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전 ‘제4차 산업혁명’ 책을 직접 읽었다고 한다. 문재인 전 민주당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제4차산업혁명’ 책을 읽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책을 읽었던 안 읽었던, 제4차산업혁명은 일자리 문제와 관련하여 모든 대통령 잠재 후보들의 큰 관심 영역임이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포괄적인 일자리 정책 발표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의 보고”라며 “우수한 인적자원을 보유한 한국경제는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성에 안 찼던지 어제 관련 토론회에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사실상 부처 신설을 공약했다.

4차산업혁명은 도전과 기회의 양면을 갖고 있다고 보면, 문재인 전 대표는 기회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대통령후보 검증 TV대담에서 IT기업CEO 출신답게 4차산업혁명이 제기하는 도전을 일자리 파괴로 보고 구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교육개혁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문명의 속성이다. 따라서 거시적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제4차산업혁명은 치밀하게 준비하고 선도해야 한다. 과거 모든 기술 발전이 산업에 적용될 때마다 일자리의 변화는 수반되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일으킬 일자리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와 심도가 클 것이 예상된다. 제4차산업혁명이 불평등과 더불어 일자리붕괴를 몰고 온다면 이에 대응하는 것은 국가적 도전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경제의 총량을 키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부정적 측면이 몰고 올 개인적 사회적 불행을 소홀히 예측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에겐 신경 쓸 큰 일이 너무 많다. 대통령이 과학기술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던지는 시대적 변화를 미리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직관은 대통령에게 더없이 중요해 보인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이 일자리 문제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당장은 국민이 지도자를 고를 때 판단의 자료로 좋고, 그 토론 과정에서 여론이 수렴되어 선거후 누가 정책을 펴든 국민의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다. 또 각 후보 뒤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Pool)이 드러난다면 국가 인력 활용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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