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중 제70회 졸업…"고교진학도 하고파"

"꿈만 같아요. 제 생에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 앞에 이 졸업장을 바치고 싶습니다."

3일 오전 제주 애월중학교 해망관에서 열린 '애월중학교 제70회 졸업식'.

손주뻘 되는 동료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김대현씨(60)는 이날 연단에서 졸업장을 받고 소년이 된 듯 상기된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해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교를 그만둔 지 45년 만에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은 것.

이날 김씨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었던 면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한 공로로 학교로부터 '만학상'을 받아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연단에서 내려온 그는 그동안 자신을 도와줬던 교사들, 동료 학생들과 일일이 포옹을 나누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딸과 사위, 손자 등 가족들과 지인들도 그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졸업을 축하했다.
 

제주시 애월읍 출신인 김씨는 14세이던 1970년 애월중학교에 입학해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학업을 중도 포기해야 했다.

여름방학 중 2학기 공납금 4350원을 미처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씨는 해녀였던 어머니가 간질병으로 앓아 누운 뒤 친척이 운영하는 감자공장에 물을 대는 일을 시작으로 일찍이 가장 노릇을 해 왔다. 그러나 줄곧 도움을 주던 친척 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학비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열일곱 나이에 교복을 벗고 사회에 뛰어든 김씨는 시내버스 회사에 취업해 하루 100원꼴로 봉급을 받으며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들을 돌봤다. 어린 마음에 부모를 원망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럴 겨를도 없었다"고 손을 저었다.

20세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읜 뒤에는 건축자재 공장에서 일하며 홀로 가족들을 뒷바라지했다. 고된 시간이었다. 김씨는 작업 중 왼쪽 손가락 2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공장장이 된 후에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는 "큰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만큼 기뻤던 순간은 없었다"고 말했다. 내심 중학교를 중퇴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던 탓이었다.
 

그렇게 김씨는 몇년 전 중학교 편입을 결심했다. 공납금 '4350원'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것을 평생 한으로 삼았던 어머니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인들과 함께 편입 방법을 수소문했고, 학교 측의 적극적인 협조로 지난해 9월 다시 중학교 책걸상 앞에 앉게 됐다.

그는 매일 아침 열여섯 동급생들과 함께 아침조회를 받는가 하면, 중간·기말고사도 빠짐 없이 치렀다. 김씨를 '아저씨' '형님'이라고 부르며 알뜰히 챙겼던 학생들의 도움도 컸다.

긴긴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이날 졸업식장을 나온 김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 앞에 졸업장을 바쳤다. 김씨는 앞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할 생각이다.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가 공납금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것을 그렇게 한스러워 하셨다"며 "제 마음속에 있는 어머니께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살아 보니 자신의 삶에 얼마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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