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초 제주에서 열린 제2회 국제전기차엑스포(IEVE)를 찾았던 사람들은 현대자동차의 전시 부스에서 의아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부스는 은회색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고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장막 너머를 뚫어져라 바라보면 자동차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소개 팻말에 ‘미래지향적 스포티 전기차”라고 쓰여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구경꾼들이 기웃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이건 또 무슨 쇼지?”

의문은 곧 풀렸다. 국제전기차엑스포는 순수한 전기차만 출품할 수 있었던 탓에, 그때까지 전기차를 개발하지 못했던 현대자동차는 이렇게 '실루엣 출연'으로 대신한 것이다. 수소차 개발에 주력했던 현대자동차에겐 실망스럽게도 친환경 자동차의 변화 추세가 전기차로 기울었다. 모르긴 해도 현대자동차 내부에선 진통이 있었을 법하다.

제3회 국제전기차엑스포가 오는 18일부터 아름다운 주상절리 서귀포 해안에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다. 올해 현대자동차는 구석에 비켜서있던 작년과 달리 전시 부스를 무대 중앙으로 옮기고 야심차게 제작한 전기차 ‘아이오닉’(IONIQ)을 그 부스 위에 세울 참이다.

아이오닉은 지금 제네바 모터쇼에 나가 있다. 데뷔 성적에 상관없이 아이오닉은 제3회 국제전기차엑스포에서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의 첫 전기차 모델이기 때문이다.

지난 두 차례의 제주 국제전기차엑스포는 기아의 ‘쏘울’, 르노삼성의 SM3ZE, 한국GM의 ‘스파크EV', BMW의 'i3', 닛산의 ’리프‘, 중국의 BYD의 무대였다. 현대자동차가 빠진 엑스포는 마치 장손이 없는 제사 집 모양새였다. 산업국가로서 자존심이 물오른 한국인의 정서로는 고우나 미우나 현대자동차에 대한 기대가 아직 이렇게 진하다.

이번 3회 행사에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외 완성차 업체와 삼성, LG, SK, 한전 등 대기업을 비롯해서 약 100여개의 전기차 부품 업체들이 참여한다. 또 전기차 국제표준 포럼을 비롯하여 세계의 전기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문가 및 정책입안자들의 회의가 다양하게 열린다.

자동차의 시장성이나 문화로 볼 때, 제주도는 너무 작은 지역이다. 그리고 섬이다. 운행되는 자동차가 고작 30여만 대다. 자동차 생산시설은 물론 자동차 관련 연구소 같은 것도 없다. 이런 곳에서 자동차와 관련된 국제 엑스포를 여는 것은 일견 생뚱맞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2014년 1회, 2015년 2회 엑스포는 예상외로 성공적이었다. 조직위원회가 맨땅에 헤딩하듯 뛰고 또 뛰어서 테슬라를 제외한 세계 유수 전기차 메이커의 엑스포참여를 성사시켰다. 제조사가 모이면 부품업체가 따라오고 기술 및 판매전문가가 모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방문객이 1회때 5만명, 2회때 8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방문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초기 단계의 전기차 산업 및 문화 전반에 대한 기술 및 시장정보의 상호교류였다.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전기차제조사는 물론 학계 전기차전문가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그래서 제주도가 전기차로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엑스포의 시작은 미미했다. 2013년 여름 제주 지역 전기사업자였던 김대환씨(엑스포조직위원장)가 지방자치단체별로 배정되는 산자부의 마이스산업(회의, 인센티브관광, 컨벤션, 엑스포) 과제를 하나 땄다. 공모에 신청한 과제 주제는 ‘전기차엑스포’였고 보조금은 2억 원이었다. 허둥지둥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8개월 만에 치른 국제행사가 예상외의 성과를 냈다.

이렇게 자동차 산업문화와 별로 연관성이 없던 제주도가 전기차로 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제주도의 독특한 환경과 이를 잘 읽은 정책의 조합이다.

제주도의 도로는 동서 70km, 남북 35km, 둘레 180km다. 해안도로에서 해발 1,100m의 산악도로까지 있다. 연중 기상변화가 심하고 겨울엔 서울에서 보기 드문 폭설이 내린다. 이런 조건이 배터리 주행 거리가 제한된 전기차의 테스트베드(testbed)로서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한 정부가 제주도를 전기차 보급 시범지역으로 선정했고, 관광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미래의 산업을 찾지 못하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기회로 적극 활용하였다.

과거 제주도는 전기산업 전체의 불모지대였다. 3개의 소규모 화력발전으로는 전기공급이 모자라 해저케이블을 통해 전남에서 막대한 전력을 공급받아 왔다. 기후변화 문제는 우리 정부로 하여금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문제를 종합해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제주도가 스마트그리드 시범단지가 됐고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제주도의 정책이 ‘2030탄소제로섬’(Carbon-free Island)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제주 섬의 운행차량 30여만 대를 모두 전기차로 교체하고, 제주도가 소비하는 전력을 전부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정책 비전이 수립됐다. 도민들 대부분은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인지 잘 몰랐기에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특히 2013년 취임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일반 주민은 물론 공무원들도 의아해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업의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1차산업과 관광에 의존하는 제주도가 앞서 변화에 참여하는 것이 지역의 미래 발전에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가장 가시적인 2030프로젝트 항목이라 할 수 있다. 원 지사는 작년 12월 초 파리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2030탄소제로섬’프로젝트를 들고 나가 지자체의 탄소감축 사례로 발표하는 등 국제무대에 제주를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2030탄소제로섬’ 프로젝트는 파리기후협정 채택을 기점으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21세기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1.5도 이하로 줄이자는 목표를 세웠고, 이에 따라 195개국이 자발적 온실가스감축에 참여하게 된다.

한국정부는 유엔에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37% 감축하겠다고 약속했고, 박근혜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총회에서 이 약속을 확인하면서 제주도의 ‘2030탄소제로섬’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약간 빠르고 약간 무모해 보였던 제주도의 정책비전이 중앙정부의 기후변화정책 그리고 유엔의 기후변화 대응 목표와 일직선의 배열(alignment)을 이루게 된 셈이다. 정책담당자들도 '전기차 하면 제주도'라는 인식을 갖게됐다.

이런 맥락에서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 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기차엑스포의 의미도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과 그 산업적 파생효과에 있다. 전기차 보급을 맡은 환경부는 올해 8,000대의 전기차를 1대당 1,200만원의 보조금을 주어 각 지자체에 할당했다. 제주도가 이중 절반인 4,000대를 배정받아 보급한다. 제주도의 정책의지와 엑스포의 성과를 보고 중앙정부가 그 효과를 감안해서 결정한 것이다. 올해 말이면 제주도에서 6,000대가 넘는 전기차가 운행된다.

전기차의 생명선인 충전인프라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게 제주도에 촘촘히 깔리고 있다. BMW를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전기차제조사들이 제주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이 가진 규모가 아니라 테스트베드의 입지에서 판매전략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보급이 제주도 지역사회에 주는 이익은 깨끗한 공기, 회의산업 유치효과, 전기차보급과 운행의 노하우 선점, 제주도의 브랜드가치 제고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반면 대두되는 문제점도 있다. 충전인프라가 절대 부족하다. 숫자가 많아지면서 관리도 엉망이다. 상업성이 확보되지 않는 채 정책으로 충전인프라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사점이다.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중고차의 거래에 대한 시민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전기차가 대량 보급되고 폭우와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안전한 관리체계도 별로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마냥 정부의 보조금을 믿고 전기차 보급을 밀어부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바로 중앙정부가 참고해야 할 전기차보급 데이터라 할 수 있다.

이번 엑스포에는 국내외 전기차 제조사의 고위임원, 산자부 및 환경부 장관 등 정부고위 인사들, 전기차 관련 국제단체의 간부들, 세계각국의 전문가들 그리고 하와이, 스위스, 덴마크, 인도네시아, 중국의 전기차 보급 지역 주지사와 시장이 여럿 참석한다. 각종 모임과 회의에서 교환되는 각종 정보와 견해, 의견, 논평 등이 정책입안자나 전기차업계의 비즈니스에 귀중한 정보로 활용되고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아직 전기차는 실험중이기 때문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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