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육상·사격·수영·펜싱·승마까지 제주 유망주 김대원군

“힘든 걸 넘어서면 쉬운 일이 되잖아요.”

올해 한국체대에 특기생으로 입학하게 된 제주사대부고 김대원군(19)은 근대5종이라는 종목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덤덤하게 답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5종은 한 선수가 하루 동안 펜싱·수영·승마·사격·육상 등 5종목을 치러 승부를 내야하는 종목이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전쟁터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병’의 모습에서 착안해 만든 것으로, 그는 “근대5종 경기를 하는 사람은 승리를 하든 못하든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 가지 운동만 잘하기도 힘든 법인데 다섯 가지 운동을 두루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신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정신력도 필요하다.

상상만으로도 버거운 근대5종을 김군이 시작하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시절 몸집이 왜소했던 그는 수영을 시작하게 됐고 근대5종의 산실로 불리우는 귀일중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중학교 때는 육상과 사격을 합친 ‘콤바인’과 수영 등 3개 종목으로 겨루게 되는데 김군은 또래에 비해 체구도 작은데다 적극적으로 체력을 관리 받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열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와 9살 터울의 여동생과 셋이서만 살게 된 김군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수영기록을 키우려면 아침밥을 꼭 먹고 와야 해”라는 지도교사의 말에 이른 아침 어머니를 보채지도 않고 스스로 물에 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고는 학교로 향했다.

‘저 몸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김군은 그저 묵묵히 지도교사의 말에 따라 훈련에 매진했고 각종 전국대회에서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함께 출전한 제30회 전국근대5종선수권대회에서 단체 2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이듬해 제23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전국근대5종경기대회에서는 제 몫을 톡톡히 해내 단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단체전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중3 때는 제30회 회장배전국근대5종경기대회 개인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고등부에 들어서도 파죽지세는 이어졌다.

제16회 학생중고 및 실업연맹 전국대회에서 개인 1위 및 릴레이 1위를 했고, 펜싱종목이 추가된 뒤에도 제32회 회장배전국근대5종대회와 제26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전국근대5종대회, 제96회 전국체육대회 등에서 단체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2015 UIPM 세계유소년 근대5종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와 멕시코를 따돌리고 단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개인전 동메달도 차지했다. 아일랜드에서 개최된 ‘2016 세계유소년선수권대회’에서도 단체 금메달을 획득했다.
 

슬럼프 한 번 없이 훈련에 매진한 김군의 곁에는 제주도체육회 소속 김상희 코치(48·여)가 늘 함께였다.

6년간 김군을 지도해온 김 코치는 “사실 대원이를 처음 봤을 때 기량이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기술보다 노력이 지금의 대원이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김 코치는 “힘들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텐데 대원이는 자신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해야 할 훈련량을 다 채울 때까지 아파도 말을 안 하다가 낌새가 이상해서 물어보면 그제야 털어놔서 속상했던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김 코치는 이어 “대게들 공백기가 끝나고 돌아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대원이는 쉬면서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게 스스로 체력관리를 한다”며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앞을 향해 가기 때문에 슬럼프를 겪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딱 한 번 김군이 김 코치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단체전에 나갔다가 사격이 맘처럼 되지 않자 형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은 것이다. 그때 김 코치는 김군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 너 자신만 믿어라”고 조언했다.

그때부터 김군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달려왔다. 김군은 “내가 이겨내는 만큼 내 것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나면 다음번에는 한결 쉬워지더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훈련환경이지만 김군은 그 어느 것도 탓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전지훈련을 온 타 지역 체고 학생들과 20㎞ 왕복 달리기를 겨뤘을 때 김군이 단연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강인한 정신력 덕분이라고 김 코치는 말했다.

김 코치는 “대원이는 정신력과 더불어 심폐지구력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선수들만큼이나 뛰어난 선수”라며 “육상과 사격을 합친 콤바인 종목에서는 대원이를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성적이 좋다”고 치켜세웠다.
 

다만 김 코치는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근면성실하지 않은 아이면 믿음이 없을 텐데 다른 걸 다 떠나서 대원이는 진짜 열심히 하는 선수”라며 “대원이가 돈 앞에서 꿈을 버리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바랐다.

어머니에게 돈 얘기를 꺼내기가 미안했던 김군은 운동을 포기하고 당장 생업전선에 뛰어들까 고민한 적도 있다.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없고,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씻기고 챙기는 일을 도맡아 해도 불만이 없었다. 단칸방에서 칸막이를 한 채 세 식구가 비좁게 살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가 문제였다.

김군은 “작년에는 운 좋게 삼성꿈장학재단의 체육 장학생으로 뽑혀 1년간 대회 출전을 위한 비용을 지원받았는데 대학생이 되면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며 “다행히 특기생으로 학비는 면제 받았지만 승마까지 따로 배우려면 비용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지만 운동과 병행할 수는 없는 상황. 하루 빨리 국가대표가 돼서 월급을 받게 되면 걱정을 덜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입학도 전부터 훈련에 더욱 매진하고 있는 요즘이다.

김군은 “운동을 해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더라. 살려면 해야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어떻게든 조금만 견뎌내면 괜찮아질 거다. 나를 위해 오늘을 미루지 않으면 다음날이 개운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기계체조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도 비닐하우스에 살며 라면을 먹고 자랐어도 무한한 노력으로 그 자리에 서지 않았느냐”며 “근대5종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돼서 나 같은 상황의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 걸 알려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날카로운 집중력으로 고난을 물리치고 가난의 강을 건너 강인한 정신력으로 희망을 전달하는 선수가 되리라는 다짐을 한 김군은 이제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향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