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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강신호 회장의 보이지 않았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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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을 전후해서 제주도는 악천후였다. 한라산에 폭설이 내리면서 비행기가 연발착하고 뱃길도 끊겼다.

집채 같은 파도가 해변을 두드리던 12일 늦은 밤 애월 바닷가의 ‘베니키아호텔’ 회의장에는 30여명의 대학생들이 둘러앉아 열띤 토론 수업을 벌이고 있었다. 토론 주제는 ‘제4차산업혁명과 일자리.’ 수업 진행은 문국현 뉴패러다임연구소 대표(전 유한킴벌리 사장)가 맡았다. 학생들은 6개조로 나뉘어 책, 저널, 신문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4차산업혁명의 개념과 느낌을 조별로 10분씩 발표했다. 이어 지멘스코리아 김승환 이사의 특강이 있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의 대표적 기업 지멘스의 ‘스마트팩토리’ 사례를 강의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학생, 진행자, 특강 강사가 어울려 난상토의를 벌였다.

학생들 중에는 이공계 학생도 네댓 명 있었지만 대부분 인문사회 계열의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요즘 사회적 화두가 된 4차산업혁명을 현장 전문가들의 얘기를 통해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산업변화로 인한 일자리 붕괴에 대한 당혹감과 불안감을 숨김없이 내비치면서도 새로 생겨날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준비 방안을 얘기했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은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창의적이거나 감성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3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토론 수업은 휴먼르네상스아카데미(HRA)가 진행하는 7박8일 겨울캠프의 일부분이었다. 겨울 캠프에서 이 학생들이 소화해야 하는 하루 프로그램은 11시간. 캠프 기간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고전 명작 10권과 비즈니스케이스스터디 5편에 대해 발표 및 토론을 했으며, 10회의 특강을 들었다. ‘3박8일’이란 별명이 붙은 이 겨울캠프를 위해 학생들은 겨울방학 40일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료조사에 골몰해야 했다.

HRA는 10년 전 언론계와 기업의 퇴직자들 몇 명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조건이 열악한 지방 대학생들에게 취업능력을 향상시키고 성품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멘토가 되자는 취지에서 만든 아카데미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8시간씩 제주대학교 취업전략본부 강의실에서 이뤄진다. 전문 교육자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공부하는 양은 만만치 않다.

100권의 동서양 고전을 나누어 읽고 토론하며 글쓰기 연습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 트렌드를 공부하고 실제로 비즈니스케이스를 조별로 공부하여 발표한다. 언론이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강사진들은 학생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사회현장의 경험을 나누는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한다. 학생들은 토요일 수업에 빠짐없이 나가야 하고 여름방학 2개월 동안 인턴생활을 하고 또 봉사활동도 연간 80시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왜 이 프로그램이 가능한지는 참가자들도 설명하기 힘들다. 학생들에게 수업료가 없다는 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수업이 제주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연인원 100명의 강사 대부분이 서울에서 제주로 1박2일 여행을 한다. 학생과 만나기 위해 10년 동안 연인원 약 1000명이 서울-제주 왕복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 요금만도 2억 원은 됨직하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진행되지만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 민간 기부가 운영비의 원천이다. 제주대학교가 강의실과 일부 운영비를 보조해서 도움을 주지만, 민간 기부자들이 소리 없이 내는 돈이 큰 힘이다. 기부자는 제주도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취지에 공감하는 서울 사람도 여럿 있다.

이 프로그램(HRA)을 시작하고 1년 후 운영에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큰 기부자가 계속 기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HRA운영위원회(위원장 이유근)가 구성되어 혼신의 노력을 했지만 모금에 어려움이 컸다.

2010년엔가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동아제약) 회장이 제주를 방문했다. 당시 강 회장을 잘 아는 제주상공인 한 사람이 강 회장을 제주공항까지 바래다주면서 HRA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에서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서 언론인과 기업 간부 출신 몇 명이 대학생 취업공부를 도와주고 멘토 노릇을 한다며 매주 토요일 제주에 옵니다.”

얘기를 듣던 강 회장은 “그래요?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 사람들이군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후 강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그 아카데미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 안 되지만 좀 돕겠소. 큰 액수는 못 되지만…” 그달부터 매월 100만 원씩 기부금을 보내왔다.

강 회장의 기부로 HRA프로그램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강회장이 연간 기부액 1200만원은 전체 민간 기부액의 30%를 넘었고 기부자와 강사진 등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강 회장은 소리없는 기부자였다. 수업에 참관한 적은 물론 없었고 어떤 연락이나 접촉도 없었다. 6년 동안이나.

그리고 지난해 12월 하순 처음으로 회사 비서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회장님이 내년에 은퇴를 하셔서 12월 기부를 마지막으로 합니다. 회장님께서 1000만원 보태어 기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강회장이 아쉽기도 하고 HRA의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그렇게 배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지난 1월 초 강 회장이 모교인 서울대 의대에 10억 원을 기부했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된 것을 보았다. HRA에 참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강회장의 HRA총기부액은 7500만원이다. 그는 HRA과정을 수료한 200여명의 청년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이었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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