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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김정남 암살의 단상(斷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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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인(要人) 암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행위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다. 하지만 암살은 은밀히 기획되고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예사이므로 살인자 패거리와 현장에 있는 소수의 목격자 외에는 그 살해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기껏해야 사후(死後)의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는 정도다.

예외적이게도 우리는 2월 중순 이래 한 사람이 암살되는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반복해서 보고 있다. 폐쇄회로(CC)TV 덕택에.

중년의 뚱뚱한 남자가 공항 터미널 홀 안에서 급히 걸어가는데 젊은 여자가 쫓아가 수건 같은 천으로 뒤에서 남자의 입을 막는다. 곧 이어 또 다른 여자가 접근해서 세 사람이 뒤얽힌다. 잠시 후 여자들은 총총히 사라지고 남자는 공항직원에게 접근하여 손을 얼굴에 대며 뭔가를 호소한다. 그리고 의식을 잃고 의자에 쓰러진 모습이 나온다.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암살 장면이다. 말레시아 경찰은 암살에 가담한 두 여성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사람이며 외교관을 포함한 북한인 암살 배후 조직이 있다고 발표했다.

김정남은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은의 배다른 형이 아닌가. 사실상 마카오에서 중국의 보호망 아래 망명생활을 해온 김정남이 북한권력에 의해 제3국의 국제공항에서 대낮에 독살된 것은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암살사건에 쉽게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 북한의 예측불허와 김정은의 집권 후 행태에 면역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현재 한국의 탄핵 정국 폭풍이 너무 거세서 느끼는 충격이 완화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음식점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오갔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화가 뇌리를 스친다.

“김정일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통곡할 일 아닌가. 그래도 한때 자리를 물려주려고 생각했던 큰아들이 배다른 동생한테 살해당할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을까?”

“죽은 김일성이 더 놀라 화들짝 일어날 일이지. 장손(長孫)이 이복동생한테 왕위까지 빼앗기더니 독살까지 당했으니 말이야.”

북한 정권의 행태를 잠시 기억에서 접어두고 한국의 전통 사고방식으로만 김정남 암살을 본다면 이런 대화는 농담보다는 진담으로 들릴 만하지 않는가 싶다. 과연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의 죽음을 알기나 할까. 암살됐다는 걸 알면 어떤 생각들을 할까. 한때 김정남은 김정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후계 라인에 들어있었으나 계모 고영희가 들어오면서 북한권력으로부터 멀어져갔고 해외를 전전하는 긴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2012년 이복동생 김정은이 아버지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면서 김정남은 암살 리스트에 올랐다가 결국 제거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북한사람의 마음속에 기억될까. 아마 공포정치에 주눅이 든 북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지 모른다.

김정남 암살에서 권력의 폭력성과 반인륜적 야만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역사에서 500~60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형제나 조카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거나 권력을 강화한 역사가 있다. 태종 이방원은 권력을 얻기 위해 어린 이복동생을 죽였고, 세조 즉 수양대군은 권력을 확고히 지키기 위해 조카 단종을 제거하지 않았던가. 조선말 고종은 역모 사건에서 왕위 계승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배다른 형 이재선(李載先)을 제거하는 걸 눈감았다.

TV드라마에서는 조선시대의 권력암투와 골육상쟁이 대중의 인기를 차지한다.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는 재벌가의 형제 싸움을 심심찮게 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북한의 이런 형제 살육의 행동은 섬뜩하다.

말레시아 경찰의 시체부검결과 독살에 사용된 약품은 국제법상 대량살상무기로 저장과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로 밝혀져서 세계가 경악했다. 김정남 암살은 21세기 남북대치 상황에서 우리에게 몇 가지 경계심을 깨우쳐 준다.

첫째 북한 김정은 정권이 왕조적 권력 강화에 골몰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북한정권수립 이후 지금까지 숙청이 수없이 벌어졌어도 소위 백두혈통을 제거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번에 북한권력은 이런 전통을 치워버렸다. 김정은 권력을 위협하는 어떤 존재도 용남하지 않겠다는 북한 권력의 전략적 행동이 계속될 것을 예견할 수 있다.

둘째 김정남 암살의 지정학적 맥락이 매우 주목된다. 특히 중국의 대 북한 전략 변화가 관심거리다. 김정남은 중국령인 마카오에서 망명 생활를 하면서 사실상 중국의 보호를 받아왔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중국은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체 세력의 잠재성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불편함이 커질 것인지 사그라질 것인지에 따라 한국의 북핵문제와 한중문제 대응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비대칭 전략무기의 확장성과 파급력이 그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해온 북한의 위험 요인은 핵무기와 이를 운반하는 탄도미사일의 정밀성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김정남을 VX로 독살한 사건이 보여주듯이 북한권력이 VX 등 화학 또는 생물학무기로 남한을 위협하거나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세계를 향해 북한을 건드리지 말라는 막가파 메시지를 띄운 셈이다.

넷째, 국내 거주 탈북자의 신변경호 문제가 긴요해졌다. 그동안 한국 정보기관은 북한 고위외교관들이 탈출 사실을 자랑스럽게 흘려왔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는 가장 잘 알려진 망명 인물이며, 남한 TV등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고 있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한국에 온 그들이 자유를 구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권력의 속성으로 볼 때 언제 유명 탈북인들을 해쳐 남한을 혼란스럽게 만들려 할지 모른다. 혹시 그들이 암살의 타깃이 된다면 그들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 줄 심리적 충격이 심대할 것이다.

김정남 암살은 북한 내부에 피바람의 후유증을 부르고, 남북관계, 북중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에 예측불허의 후유증을 남길지 모른다. <뉴스1 고문>

  jjy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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