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5. 싱가포르에서 온 박용순씨
SNS로 이주민 네트워킹 조성…관광 질적 성장 힘 모아야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제주의 가치를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하는 ‘같이’의 가치로 키워보려는 이가 있다.

이주 2년차인 박용순씨(49·제주시 아라동)다. 박씨는 삼성전자를 거쳐 싱가포르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노키아에서 근무한 뒤 공간 공유 플랫폼 ‘비앤비히어로’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맡은 바 있다.

싱가포르에서 10년 넘게 거주했던 박씨는 아들이 성인이 된 이후 아내와 단 둘이 살아갈 곳을 고르다 제주행을 택했다.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 부부에게 앞에는 한라산, 뒤에는 바다가 펼쳐져있는 제주는 천천히 걸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통하는 고국이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절반 이하의 돈을 쓰고도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컸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사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박씨는 행운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은 마음에 요즘 들어 더 나은 제주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나’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박씨는 ‘같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주 도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 이주 도민 네트워킹 ‘절실’…“정책 제안으로 이어져야”
 

지난해 말 페이스북에 ‘더 나은 제주를 위한 이주 도민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그룹이 개설됐다.

박씨는 “이주 도민들이 개인적인 고민을 넘어 지혜와 목소리를 한 자리에 모은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행정 제안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제주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며 삶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그룹이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다양한 연령층과 직군의 이주 도민들이 모여들었다.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온 이들이다.

회원 수가 100명이 넘으면서 조만간 오프라인 모임을 가질 계획이라는 박씨는 “결국엔 모두가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제주에 왔을 텐데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조차 없는 게 사실”이라며 “원주민들과는 다른 시각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행정에서는 해마다 늘어나는 인구를 자랑하면서도 이주 도민을 유지시키는 지원책 마련에 대한 고민은커녕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박씨는 “이주 도민 네트워크를 따로 만드는 건 원주민과 서로 대립하기 위함이 아니라 잘 조화를 이뤄서 더 좋은 결과를 나오게 하기 위함”이라며 “소수가 의견을 던지면 반영이 힘들겠지만 수천 명의 이주 도민이 모여 토론회나 워크숍을 거쳐 정책을 제안한다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당장 정책을 제안할 순 없겠지만 일단 모여서 온라인에서만 털어놓던 고민을 나누고 비슷한 관심사별로 그룹을 만들어 교류하는 모임을 만들어볼 생각”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이주 도민들이 제주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도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씨는 “누군가는 이 역할(네트워킹)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서로 역할을 나눠서 소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 “행정에서는 외지인들이 자꾸 들어와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걸 반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주 도민 인구가 20만 명에 다다른 시점에서 더 이상 외지인들의 고민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조언했다.

◇ 틀에 박힌 제주 관광 ‘이주 도민’과 함께 바꿔야
 

최근 5년 사이 제주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로 박씨는 이주 도민들의 역할을 꼽았다.

박씨는 “경제가 발전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활동성이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예전 제주가 고전명승 관광지 느낌이었다면 열정과 패기, 기술을 가진 젊은 이주 도민들이 제주에 와서 특색 있는 곳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박씨는 이어 “건축 등 큰 경제를 맡고 있는 원주민들에 비해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제주도 자체를 매력적인 관광지로 만드는 데는 이주 도민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틀에 박힌 제주 관광에서 멈춰있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의 역량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씨는 또 “소위 육지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많은 경험과 돈을 갖고 제주에 오는 경우도 있는데 부자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경제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며 “이들을 민간 자문단으로 활용해 관광 정책 수립과 실행에 참여시킨다면 제주도 관광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제주 이주 열풍이 한풀 꺾인 이유에 대해 박씨는 부동산 가격 급증과 더불어 정체돼 있는 산업구조 문제를 들었다.

그동안 제주 경제를 이끌어 온 건 1차 산업(농업)과 관광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서비스업)인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제주 인구가 늘어나면 소득도 계속 늘어나야 하는데 이걸 받쳐줄만한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며 “관광을 발전시키는 건 맞는데 방향이 어느 쪽인지 분명하게 세우지 않으면 외형적으로는 자꾸 커지는데 도민들의 삶의 질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제주도가 5년 있다가 문 닫는 회사도 아니고 50년, 100년 이후 후손까지 계속 살아야 하는 땅인데 결국은 전략을 잘 세우고 실행을 잘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제주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최고 관광지로서의 고도화를 통해 도민들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해외에 나가서 마케팅 활동을 벌여 관광객을 유치해오는 것보다 ‘또 오고 싶은 제주’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면세점만 찾는 크루즈 관광객들의 발길을 지역시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선사에 인센티브를 줄 게 아니라 시장 내에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소비자 의지와 무관하게 무조건 집어넣기만 해서는 돈을 쓰게 만들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관광객들의 소비 수준은 갈수록 높아진다. 상품의 질뿐만 아니라 포장과 디스플레이 등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행정에서 나서서 상인들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고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육지에 가서 벤치마킹해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열 번 스무 번이라도 제주에 오겠다는 열혈 제주 팬들도 많지만 반면에 비싼 물가와 뻔한 코스 일색인 제주에 가느니 가까운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내국인 관광객도 늘어나는 것도 제주가 외면할 수 없는 잠재적인 위기 요소”라면서 체험형 관광 개발 등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들을 제주를 향한 애정의 밑거름으로 쓰고 싶다는 박씨는 오늘도 유채꽃 흔들리는 올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더 나은 제주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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