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수종 칼럼] 사드에 얻어맞은 사람들
© News1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3개월간 끌어온 탄핵 재판이 끝났다. 그러나 탄핵 정국의 여진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5월 9일경까지 계속될 판이다. 온 국민이 이렇게 국내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혼미해 있는 동안, 국제 정치의 외풍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배치의 속도를 내자 중국이 보복의 칼을 뽑아들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한한령(限韓令)을 통해 한류 스타나 콘텐츠의 중국내 공연과 보급을 제한하더니 사드 배치 장소가 확정되자 중국인 단체관광의 한국 방문 규제에 나섰다. 작년 중국 관광객 800만 명이 한국을 찾았다. 중국 정부는 이들의 한국행을 막음으로써 한국 관광 여행 업계의 목을 조르고 있다.

호텔, 면세점, 항공, 크루즈, 여행사 등 관광업계와 화장품 및 유통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엔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겨냥, 중국내 롯데마트 등 한국계 유통 점포들을 소방점검 등의 명목으로 문을 닫게 하거나 활동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 점포 앞에서 데모를 하는가 하면 식당에서 한국인에게 욕을 퍼부으며 내쫓는 일도 생겼다.

며칠 전 중국의 사드 보복을 생생히 체험한 두 지인의 호소를 우연찮게 들었다. 한 사람은 영화제작자다. 그는 재작년 한류를 타고 중국 영화투자가들에게 소개되어 한중합작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시놉시스, 즉 작품 개요를 포함한 기획안을 만들어 작년 봄부터 중국에 드나들다가 작년 여름부터 아예 베이징에 거처를 잡고 시나리오의 중국어 번역 등 작업에 들어갔다. 작년 7월 ‘한한령’이라는 이름 아래 TV드라마에서 한국 작품이 사라지는 등 심상찮은 변화가 보였다. 불안한 그는 서울을 방문해 분위기를 살폈으나 중국이 세게 나가지 못할 것이고 영화를 규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황을 정부 주변에서 들었고 한국 언론도 별일 아닌 듯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년 12월 사드 부지가 경북 성주의 롯데 골프장으로 확정되면서 그동안 열렬히 상담을 벌이던 열댓 곳의 영화 투자회사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더니 모두 뒷걸음질 쳐 버렸다. 1년간 한중 합작 영화작품 하나에 매달렸던 이 제작자는 빈손으로 베이징에서 철수했다.

이 제작자는 “경제적 손실도 컸지만 한류에 부풀었던 꿈이 여지없이 깨지는 심적 고통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업이란 게 개인 책임하에 이뤄지는 것이지만 실패하고 보니 의연하지도 못하고 졸속적인 정부의 사드배치 정책이 원망스러웠고 정부의 중국 정보 수집능력이 너무 한심하다”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의 피해자는 제주도 애월 바닷가에 있는 200실 규모의 리조트호텔 마케팅 팀장이다. 이 호텔은 중국관광객 붐을 타고 5년 전 100실 규모 1개동을 지었는데 중국인이 계속 몰려들자 2년 전 은행 융자를 받아 비슷한 규모 1개동을 증축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중국인 관광객만으로 객실 예약률은 75%가 넘었다. 종업원을 40명으로 늘렸고 중국어를 하는 종업원도 채용하는 등 미래가 밝아 보였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중국인 투숙객이 급격히 줄어들더니 지난 2일 중국 국가여유국(國家旅遊國)이 자국 여행사들에게 15일부터 한국여행상품 판매금지령을 내리자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인 발길은 뚝 끊겼다. 이 호텔은 100실짜리 한 동을 폐쇄하고 종업원도 절반을 줄이기로 했으나 과연 버틸 수 있는지 모른다. 이미 제주도에는 이런 중소규모 호텔이 문을 닫고 매물로 내놓을 정도다. 마케팅 팀장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없어지자 “마케팅 팀장의 할 일도 없어져서 알바라도 해야 먹고살 판”이라고 풀이 죽었다.

이 일화는 노상 만나는 지인들의 이야기다. 사드 보복의 절박한 피해 상황은 서울 인천 수원 등 수도권 및 부산 제주 등 전국 지방도시, 그리고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 사는 수만 명, 어쩌면 수십만 명 한국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민이 느끼는 고통과 당혹감은 중국의 보복이 무차별적이고 대규모적이며 보복 범위가 관광과 한류 같은 매우 민감한 서비스 소비 분야라는 점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북한의 핵 위협과 이에 따른 미·중 대립이 낳은 구조적 사태 때문이지만, 사드배치와 중국의 보복 과정을 보면서 몇 가지 시사점을 느끼게 된다. 한국은 공산당 일당주의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중국을 너무 몰랐고, 외교안보 문제에서 대통령 리더십 공백이 너무 컸음이 드러났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빨리 들어줘야 한다는 한국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동맹 강박관념이 사태를 악화시킨 정황이 짙다.

사드 보복이 이런 강도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중국이 10여년 이상 더할 수 없이 좋았던 한중관계를 이렇게 마냥 끌고 갈까. 중국이 한국을 이렇게 세게 때린 건 분명히 미중 갈등에 끼인 한국을 이번 기회에 길들이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분명이 있을 것이다. 사드 보복 문제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주요의제로 설정되어 큰 틀에서 해결되는 게 최상이다. 새로 선출되는 새로운 대통령이 의연하되 지혜로운 판단력을 발휘한다면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병은 초기에는 진단하기 어려우나 치료하기는 쉽고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진단은 쉬우나 치료는 어려워진다.” 이 서양 격언은 의사가 말해서 유명해진 구절이 아니다. 바로 피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쓴 구절이다.

“현명한 군주라면 현재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문제에 대하여 경계해야 하며 그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알아차린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눈앞에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처방은 이미 늦은 것이 되고 그 질병은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사드 배치를 놓고 벌어지는 미중 사이 안보 갈등은 고래싸움 같은 것이다. 마키아벨 리가 강조한 위 구절은 한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예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뉴스1 고문>

  jjy1216@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카드 뉴스
여백
기획
여백
프리미엄제주 킬러 콘텐츠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