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1번지 중문단지·바오젠·크루즈항 찬바람 쌩쌩
생계 막막 업계 울상…휴업·폐업·업종 변경 고려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하죠?”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한 15일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았던 제주 관광업계에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이날 낮 12시30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대형음식점 주차장 앞에서는 전세버스 운전자 송왕일씨(60)가 거듭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송씨는 “중국인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 원래 이 시간에는 차를 세울 데가 없어야 하는데 텅텅 비어 있지 않느냐”며 “얼마 전에는 크루즈 관광객을 기다리다가 안 내린다고 해서 허탕을 친 적도 있다. 앞으로 아예 안 들어온다니 마치 절벽에 선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01년부터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숙씨(52·여)는 “평소에는 버스가 25~30대씩 들어와서 하루 평균 1000명가량 되는 손님 중 80%가량이 중국인인데 오늘은 고작 28명이 전부”라며 “내일부터는 예약률이 아예 ‘0’인 상태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이어 “주로 패키지 여행사들은 후불로 결제하는데 폐업이 줄을 잇다 보니 연락이 닿지 않아 밀린 식사비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직원이 중국인 5명을 포함해 무려 25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끌고 나갈지 막막하다. 내국인 대상 국숫집이라도 차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두 달 여유라고 있었으면 어떻게 살지 대책이라도 세웠을 텐데 중국이 관광 금지를 선포한 뒤 보름도 안 돼서 이 지경이 됐다”며 “시장 다변화도 좋지만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가만히 앉아서 장기적인 대책만 논의해선 안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오는 7월 강정항 개항을 앞두고 크루즈 관광객들이 쏟아질 것을 기대하던 업주들은 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2016년 11월 중문관광단지 내에 문을 연 한 화장품가게 매니저는 “날씨가 좀 풀리면 장사가 잘 되겠거니 생각하면서 강정항 개항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제주항 기항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갯속”이라고 말했다.

평소 중국인들로 북적이던 관광단지 내 테디베어뮤지엄과 플레이케이팝 박물관 인근에서는 중국인들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중국인들이 꼽은 ‘가장 인기 있는 세계 10대 박물관’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는 테디베어뮤지엄은 월 평균 5000명가량의 손님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3000명이 채 안 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문 인근에서 유커를 대상으로 관광호텔을 운영하던 김종국씨(가명·40)는 당장 휴업을 고민 중이었다.

김씨는 “지금 뭐 엉망이다. 메르스 때보다도 더 황폐화됐다”면서 “협력 호텔 4곳까지 합치면 객실이 총 300~400개인데 그동안 70%가량을 채워주던 유커들이 사라지면서 직원 과반수를 정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어 “원래 12만~13만원 하던 객실들을 현재 6만~7만원에 내놓고 가장 싸게는 3만원에까지 내놨다”며 “그런데 이마저도 분양호텔들의 후려치기에 밀려서 수요가 안 생긴다. 이번 주말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휴업을 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 속의 중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았던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 역시 썰렁 그 자체였다.

늘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상 중국인을 위한 특화거리로 운영돼 온 만큼 내국인 관광객도 있을 리 만무했다.

대부분의 상점가들은 최소 30%에서 최대 80%까지의 ‘세일 특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손님 자체가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복수의 상점가들은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며 푸념을 쏟아내기 바빴다.

바오젠거리에서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오늘 받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다. 손님뿐만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번 달 매출은 전년 보다 80% 이상 떨어질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종업원들도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30% 세일을 70% 세일로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이달 매출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 같다”면서 “가뜩이나 몇 년 전부터 자고나면 임차료가 올라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버텨야 할지 눈앞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바오젠거리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 근로자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업체들이 인건비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화장품점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T씨는 “4명이었던 중국인 직원 수가 다음주부터는 1명으로 줄어들 것 같다”며 “대부분 유학생들인데 학비에 생활비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제주국제크루즈터미널은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모습이었다. 전날 날씨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 크루즈까지 두 척이 연이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을 떠나보내는 가이드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가이드 이모씨(28·여)는 “이제 굶어 죽게 생겼다”면서 “중국에서 한국을 아예 못 가게 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우리 가이드들은 무얼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제주 원룸에서 거주하던 조선족 가이드 중 일부는 방을 빼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크루즈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던 전세버스 기사들과 터미널 내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게 마지막 크루즈”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가 1000명대로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제주도가 발표한 ‘중국의 한국 관광 금지에 따른 일일동향’에 따르면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 9일 4470명에서 13일 3231명, 14일 1057명 등으로 1000명대로 뚝 떨어졌다.

특히 14일 하루 동안 크루즈를 통해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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