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5.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 운영자 박산솔씨
경제적 매력 떨어져 아쉬움…농업·관광업 벗어나 IT업 키워야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제주도는 언제든 이주민들이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2015년 1월 제주에 온 박산솔씨(32·서귀포)의 요즘 최대 고민은 ‘제주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서울의 전자책 출판사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면서 IT 기술로 먹고살 수 있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지만 제주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는 예상보다 더 쉽지 않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한 적도 많다. 두 아이를 둔 가장이기에 고민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바다와 별을 선물해주고 싶어 택한 제주행이지만 경제적인 이유에 가로 막혀 떠남을 고민해야 할 때마다 속이 상한다.

그런데도 그가 웃음을 잃지 않는 건 제주에서 조만간 ‘새로운 바람’이 불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 경제적 매력 떨어진 제주…환상은 여전히 유효
 

제주에 산다는 건 ‘일상이 여행’이 되는 일이었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노란빛을 발산하며 마음을 간지럽혔다. 보고 또 봐도 바다는 질리지 않았고 아내와 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서귀포’는 꿈꾸던 제주의 삶을 펼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편의시설들이 떨어져 있어서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첫째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웹툰으로 그리는 아내를 도와 ‘큼이네집’이라는 책도 펴냈고, 이 과정에서 둘째가 태어나 등장인물이 한 명 더 늘어나기도 했다.

행복한 발걸음의 발목을 잡는 건 경제적인 문제였다.

전세난민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왔건만 이곳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전세 값에 치여 2년 마다 짐을 싸야하는 설움이 싫어서 제주에 왔는데 여기도 서울 못지않게 부동산 값이 뛰어 골치가 아프다”며 “작년 말 집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육지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이어 “예전에는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판 돈이면 제주에서 살 집도 구하고 가게도 하나 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딱 집 하나 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집을 팔고 내려와도 먹고 살 거리가 없으니 이주를 망설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포털사이트 검색 통계 서비스를 통해 ‘제주살이’와 ‘제주이주’, ‘제주이사’ 등 3개 키워드에 대한 검색 통계를 살펴본 결과 2015년을 기점으로 이주와 이사에 대한 관심도가 뚝 떨어졌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제주살이에 대한 검색은 꾸준히 높아지는 반면 이사나 이주라는 검색은 급감하고 있다”며 “유추해보면 제주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은 여전하지만 집값이나 일자리 문제에 부딪혀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매력을 잃은 제주에 안타까움을 표한 박씨는 “현실적으로 제주에서 생활이 가능할 만한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며 “부동산이 계속해서 오른다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됐던 이주민들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지금 제주에 내려온 이주민들의 숫자는 허수”라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나면 제주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귀포 신시가지 아파트의 경우 분양만 받아놓고 실제론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밤이 되면 3분의 1만 불이 켜져 있고, 건축일 때문에 온 이들은 방 하나에 4~5명씩 살면서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박씨는 “예전에는 꼭 서울에서 살아야하고 서울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는데 이제는 본인들의 삶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추세”라며 “비교적 집값이 싼 남해나 강릉으로의 유혹도 있지만 그래도 제주에서 이 삶이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 “제주를 버려야 제주가 산다”
 

제주에 와서 가장 아쉬웠던 건 농업과 관광업에만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산업구조였다.

바깥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제주’라는 공간에 갇혀서 제주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주해 오기 전 귀농·귀촌교육을 받았지만 역시나 1차(농업)와 3차 산업(관광)에 대한 교육뿐이었다. 6차 산업(IT)에 종사하는 박씨의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은 없었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페이스북에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를 스스로 만들었고 개설한 지 1년여 만에 회원 수가 1000여명에 이르렀다.

지난 1년간 제주에 이주해왔거나 이주를 고민하는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혹은 스타트업 등 다양한 IT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정보와 고민을 공유했고, 실제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

박씨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IT업계 분들이 제주에 굉장히 많이 내려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마존에서 수십 년을 일한 개발자를 비롯해 페이스북 개발자 등 서울에서도 강의를 듣기 힘든 분들이 제주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모두 제주가 고향이 아닌데도 제주를 향한 애정으로 떠나온 사람들”이라며 “도에서는 이런 고급 인력들이 있는 지도 모르고 인적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개중에 몇몇이 제주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나설 수 있는 장이 없다”며 “지리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펼칠 수 있는 게 IT업인데 행정에서는 농업과 관광업에만 갇혀서 새로운 방향의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제주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그는 “계속해서 관광에만 집중하면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제주(이미지)를 파는 일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제주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특정 국가에 경제가 휘둘리는 위험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덜컹거리는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바퀴에 기름칠을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박씨는 “일단 멈추고 방향에 대한 재설정을 해야 한다”면서 “바다를 팔아서 돈을 벌 게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며 일하는 이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한다면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씨는 한쪽으로 치우친 성장정책을 바꾼다면 육지로 향하는 제주청년들의 발길을 돌리는 것은 물론 떠남을 고려하는 이주민들의 마음도 붙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박씨는 제주에서 아내가 그린 웹툰으로 그림책도 만들고 게임도 제작할 수 있길 꿈꾸고 있다.

아울러 귤을 사다먹는다는 말에 박스째 귤을 퍼다 주는 따뜻한 이웃들의 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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