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항공사 요금 횡포가 탄생 계기…지역항공사로 출발

2001년 3월9일 제주시 애향운동장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사람은 3만여 명에 달했다. 선거 유세나 인기가수의 콘서트장이 아니라 대형항공사들의 항공료 인상을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었다.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는 자주 항공료를 인상해 도민들에게 큰 부담을 줬다. 도민들의 불만은 대규모 요금 인상 반대 결의대회로 이어졌고 항공료 인상 반대 서명운동에는 16만8000여 명이 참여했다.

제주항공 설립에 참여했던 강관보 전 제주도의회 사무처장은 "아마 탐라국(제주의 옛 명칭)개국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일 것"이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강 전 사무처장은 제주에 지역항공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제주도 지역항공사설립추진 행정지원단장을 맡아 누구보다 제주항공의 태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강 전 사무처장은 "항공요금 인상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화되면서 대형항공사는 매해 요금을 올렸고 도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우리가 항공사를 만들자는 여론이 불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항공료 인상으로 논란이 된 저가항공사 1위 제주항공의 탄생 계기가 대형항공사의 요금 인상이었다는 얘기다.

지역항공사 설립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기존 항공사의 견제는 물론 항공법을 개정해야 하는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도 난색을 표했다. 지역에서 항공사를 만든다는 발상은 강 전 사무처장의 말을 빌린다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도의회에서 조차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등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2003년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는 도의회 도정질문에서 "도민들이 뭍 나들이를 할 때 95% 이상 항공기를 이용하지만 1년에 한 번 이상 오르는 항공기 요금으로 부담이 커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역항공사 설립이 제시됐다"며 지역항공사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역항공사가 있어야 한다는 도민들의 여론과 관계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제주도는 애경그룹을 사업 동반자로 결정해 애경이 100억원, 제주도가 50억원을 출자해 제주항공을 설립했다.

항공 요금 변경은 양쪽이 협의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제주에어 사업 추진 및 운영에 관한 협약서'도 체결했다.

강 전 사무처장은 "제주도가 애경그룹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창업자가 제주에서 태어나는 등 제주와의 인연도 고려했다"며 "제주를 위해서 항공사를 운영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지사가 제주항공 사장과 지점장 인사에 관여했을 정도로 설립 초기 2대주주로서 제주도의 권한은 컸다.

그러나 25%이던 제주도의 지분율은 점차 낮아져 2015년 3.9%까지 떨어졌다가 애경이 2016년 주식 100만주를 무상증여해 7.7%로 상승하긴 했어도 예전만한 위상은 아니다.

제주항공은 올해 초부터 제주 예약센터 폐쇄와 방사능 우려가 있는 일본 후쿠시마 부정기편 운항 추진, 요금 인상 등 연이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항공사들의 잇따른 요금 인상은 사드 보복으로 제주 관광이 위기에 놓인 상황이어서 업계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제주항공은 제주의 항공교통 수단을 개선한다는 설립 목적 아래 제주도가 2대 주주로 참여하고 있어 도민들의 시선이 더 따갑다.

강 전 사무처장은 "안전성과 편리함을 제외하고 모든 거품을 빼 도민 부담을 최소화한 항공사를 만들자는 게 처음 지역항공사 설립의 목표였다"며 "어떻게 만들어진 곳인데 설립 당시 기본정신을 잃고 멋대로 요금을 올리는 지금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앞서 제주항공은 제주와 김포, 부산, 대구, 청주를 잇는 4개 노선의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혀 제주도가 '항공요금 인상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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