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7. 동갑내기 전진호·조용재씨
고사리 따서 사회공헌…생태·체험관광으로 제주 매력 알려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어두운 밤 제주시 조천읍 중산간의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사이에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제주의 밤하늘을 마구 흔드는 이들은 비슷한 시기 제주행을 택한 동갑내기 친구 전진호(44·제주 애월 광령)·조용재씨(44·제주 화북)다.

전씨는 2013년 5월 30일, 조씨는 2014년 2월 5일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에 발 딛은 날짜를 까먹지도 않는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된 날인데 어떻게 까먹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마주보고 웃는다. 그저 제주가 좋아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내려와 반년 넘게 백수로 지냈단다.

언론인이었던 전씨가 제주생태관광에서 일을 하게 되고 IT종사자였던 조씨가 벨리타 캠핑장을 맡아 운영하게 된 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은 점화됐고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들은 제주라는 한 공간 안에서 장작처럼 서로 마음을 기댄 채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이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이유는 따뜻한 마음으로 곁을 허락해주는 자연과 도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 고사리 따서 사회공헌…'함께하는 삶'
 

“섬사람들이라고 해서 육지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던데요?”

오자마자 동네에서 갑장(동갑) 친구 부부를 사귀게 됐다는 조씨는 현재 소속된 사회인야구단 중 유일한 이주민이다. 섬사람 특유의 배타적인 문화가 있다는 말도 옛말이었다.

사실 조씨가 다른 이주민들보다 빨리 도민들 속에 흡수될 수 있었던 건 전씨의 도움이 컸다.

전씨는 아내의 고향이 제주인데다 수년간 사회복지분야 기사를 주로 쓰면서 전국에 쌓아놓은 인맥이 많았다.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인간관계를 다지는데 한몫했다.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니 곳곳에서 길이 열렸다. 그 중 하나가 사비 털어 사회사업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른바 ‘사사모’다.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몰라 실천할 수가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은 전씨는 “그럼 우리가 한 번 실천 모임을 결성해보자”고 운을 뗐다.

처음에는 ‘그게 되겠느냐’며 고개를 내젓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나 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2014년 학연·지연·혈연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진짜로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

우선 수입원을 얻기 위해 그해 4월부터 지천에 널린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고,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감귤 밭 1400평을 빌려 사회공원에 쓰일 귤나무도 기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른 귤들은 전국의 사회복지관으로 보내졌고, 수익금으로는 타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교육의 기회가 적은 제주에 교육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전씨의 권유로 사사모 활동에 동참한 조씨는 “사실 친목을 목적으로 참여했는데 나중에는 제주에서 내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며 “길가의 고사리를 꺾어서 강연이나 다른 어떤 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숨을 불어넣는 걸 보면 참 재기발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씨를 치켜세웠다.

손사래를 친 전씨는 “외부에서 좀 거창하게 봐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여느 봉사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제주라는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며 “보다 더 주체성을 갖고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고 지척에 오름과 올레길이 있는 제주에서 이들은 결코 혼자만 행복하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지를 고민했다.

◇ "제주의 속살 그대로 보여줬으면"
 

생태관광과 체험관광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불만은 제주가 자꾸 ‘공구리(콘크리트)’로 뒤덮이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인증을 받아 명실상부 ‘세계인의 보물섬’인데도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씨는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도두 바다에서 깅이(‘게’의 제주도 방언)를 잡아먹을 정도로 자연이 깨끗했는데 이제는 바다도, 중산간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곳들이 많다”며 “우리처럼 자연이 좋아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투자의 목적만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씨는 “유네스코가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는 보존과 활용을 공존시키라는 것 아니냐”며 “개발을 최소화하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캠핑인데 제주는 캠핑과 관련된 정책이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세계자연유산을 몸으로 느끼고 가게 해줘야 하는데 자꾸 소비하는 방식으로만 정책 방향이 세워지는 것 같다”면서 “미국의 그랜드캐년으로 캠핑을 다니는 마니아들에게도 제주는 캠핑의 성지다.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세계자연유산 지정 나라에는 캠핑문화가 활성화 돼 있는데 제주는 진입장벽도 높은데다 캠핑장도, 트레킹 코스도 제대로 구축이 안 돼 있다. 유명 관광지 두어군데 보고 갈 데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제일 속상하다”며 “다른 이들도 나처럼 제주가 갖고 있는 자연적 가치를 온전히 느끼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생태관광마을’로 거듭난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사례를 소개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돼서 협의체를 조직해 생태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안전을 위해 청년회에서 산악훈련도 받는다”며 “이런 움직임들이 앞으로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천혜의 섬 제주를 향한 이들의 뜨거운 애정은 제주에 봄을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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