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백년대계 바로 잡자] 上. 비좁은 학교 현장

[편집자 주] ‘제주 러시’로 인해 일부 도심지역에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주거시설 확장에 맞춘 교육시설이 구축되지 않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머리를 맞대야 할 행정당국과 교육당국이 엇박자 행보를 보이는데다 신규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한 재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스1 제주본부는 3차례에 걸쳐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안을 짚어본다.
 

"운동장이 작아서 맘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급식실도 좁아서 쫓기듯 밥 먹어요."

제주시 아라동 아라초등학교 6학년 김모군(12)은 주말마다 사촌형이 다니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반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매일 수업을 받는 집 옆 아라초등학교에도 물론 운동장이 있지만 가지 않는다. 너무 비좁아서다.

현재 아라초 운동장 면적은 약 2800㎡로, 학생 1인당 가용면적은 2㎡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실상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는 체육대회도 학년별로 하루씩 일주일 동안 치르기로 했다.

같은 학교 4학년 이모양(11)은 "배가 고파 점심 전 군것질이 일상이 됐다"고 했다. 등교 전 엄마가 싸준 과일을 먹거나 쉬는 시간을 틈 타 인근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와 친구들과 나눠 먹는 식이다. 점심을 오후 1시가 돼서야 먹기 때문이다.

오전 11시20분부터 1시10분 사이 유치원생과 1·2학년, 5·6학년 배식이 다 끝난 뒤에야 3·4학년 배식이 이뤄진다. 학생 수에 비해 급식실에 좁다 보니 점심시간 마저 3교대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급식실은 매일 매일이 전쟁터다.

이는 모두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현재 아라초교 학생 수는 1405명(48학급)으로, 8년 전과 비교해 2.6배 가량 증가했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2021년에는 학생 수가 무려 1748명(60학급)까지 늘어 제주에서 가장 과대한 학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에 발맞춰 규모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8년 동안 증축은 2016년 단 한 차례만 이뤄졌다. 교실 15개가 늘어나긴 했지만, 학교 측은 당장 내년에도 교실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4교대 급식'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2001년 예견됐다. 당시 제주시는 아라동 일원에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제주도교육청은 개발에 따른 학생 수 증가를 우려해 아라초교 인근에 초등학교 신설이 불기파하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그러나 제주시는 이해관계자 설득과 항공법 개정 등으로 사업인가가 지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지역주민과 토지소유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며 개발 추진을 강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의견수렴을 위한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역구 시·도의원을 포함한 마을주민 30여 명에 불과했다.

결국 학교 신설 대신 아라초 증설로 결론이 내려져 오늘에 이르렀다. 아라초교를 '콩나물 학교'로 만든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행정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시 이도2동 이도초등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생 1인당 운동장 가용면적이 약 3.3㎡(1평) 정도로 다소 협소한 데다 학교 건물 내부 체육관에서는 최대 4개반이 동시에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학교 정문 5m 앞 골목길은 인도 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학생들이 도로로 내몰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모군(12)은 "등하교를 할 때마다 학원 차량과 승용차들이 학교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고를 당할까 무섭다"고 말했다.

현재 이도초교 학생 수는 총 1175명(41학급)으로, 5년 뒤인 2021년에는 1429명(50학급)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2012년 개교 당시 학생 수(407명) 보다 무려 3.5배 많은 숫자다.

이도초교가 개교하기 전인 2010년 이도2지구 도시개발사업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당초 이 일대 주거용지의 42.4%는 세대 수가 적은 단독주택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이에 제주도교육청도 24학급(약 600명) 정도로 2012년 이도초교를 신설했다.

문제는 개발이 이뤄진 뒤 용도변경이 이뤄지면서 다세대 주택이 무더기로 들어선 것. 결국 이도초교는 입학생 급증으로 개교 5년 만에 두 차례에 걸쳐 증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측은 "이제는 학생 수용능력이 안정화됐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학교 인근에 위치한 이도주공아파트 1단지가 재건축을 앞두고 있고, 인근 시민복지타운에도 700세대 규모의 행복주택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도초교에 재학 중인 두 자녀를 둔 안재영 이도초 아버지회장은 "아파트 재건축에 주택 건설까지 예정됐는데 이렇게 대비책 없이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이냐"며 "도시개발도 이렇게 무턱대고 진행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희근 제주도학부모회장연합회장도 "교육 없이 도시개발이 이뤄졌을 경우 해당 지역의 아이들은 공동체 활동에 있어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며 교육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개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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