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라식수술을 한 사람의 행복이 얼마나 간다고 생각하세요?”

11년간 경기도 수원에서 삼성전자를 다니다 2015년 덜컥 꿈에 그리던 제주에 내려온 황인학씨(41·제주 노형동)에게 행복은 여전히 유효했다.

13일 제주 노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아이가 곁에 있고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바다와 오름이 있어서 정말 좋다”며 제주에서의 삶에 큰 만족을 드러냈다.

다만 그는 “이 일상이 당연한 일이 돼서 나중에는 행복인 줄 모르게 될까봐 두렵다”며 “가족을 가장 중심에 놓고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지를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황씨.

체험관광 플랫폼 ㈜탐라탐험 팀장을 맡고 있는 그가 추구하는 행복 속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이 된 제주도민과 제주를 찾은 여행자들을 위한 고민도 담겼다.

◇ 내일을 꿈꾸기 위해 찾은 제주
 

레저문화를 즐기는 황씨에게 제주는 늘 설레는 장소였다.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어둔 날이면 가기도 전부터 마음이 들떴고 틀에 박힌 일상에 큰 활력이 됐다.

그렇다고 회사일이 딱히 힘이 든 건 아니었다. 두 아이를 위해 주말·야간근무를 빼는 게 가능했고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오갈 수 있는 출퇴근길도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문제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 하나의 톱니에 불과하다는 인생의 덧없음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딴 생각들이 자꾸 떠올랐지만 이미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 속에서 개인의 생각을 펼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 세상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싶은 갈망이 더 짙어졌고 어린 두 딸아이에게 전념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더 이상 회사생활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황씨는 내일을 꿈꾸는 삶을 쫓아 제주행을 택했다.

황씨는 “오늘이 힘들다고 불행한 거라고 하는데 오늘 힘들어서 내일이 더 낫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며 “대기업을 다녀도 10년 후가 뻔하니 행복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팻바이크를 타고 거침없이 오름을 올랐고 차량 루프에 텐트를 장착한 채 눈을 감기 전까지 바다를 만끽하면서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체험관광 플랫폼인 ㈜탐라탐험을 운영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제주행을 결심하며 아내와 약속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 캠핑·밤문화·키즈투어 등 입맛 맞춘 관광상품 개발
 

제주를 여행하며 느꼈던 아쉬움은 숙소에 복귀하는 순간 끝이 나버리는 일정이었다. 밤이 되면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황씨는 “게스트하우스가 인기가 좋아진 건 싸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노는 게 좋아서”라며 “일행들끼리 숙소에서 가서 술을 마시고 잠들어버리면 끝나버리는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의 설렘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황씨는 루프탑텐트 대여를 추천하며 “제주는 육지와 달리 캠핑 여건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캠핑을 통해 눈을 감을 때까지 여행을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또 “사람들은 자연을 즐기며 바비큐 파티를 즐기길 원하는데 게스트하우스나 특급호텔 위주로만 형성돼 있다”며 “펜션이나 리조트를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파티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파티 아웃소싱’을 제안한 황씨는 “술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식사와 파티를 병행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싶다”며 “일단 한 장소에서 시작한 뒤 잘 되면 권역별로 확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제주여행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황씨는 “가족 단위로 오면 아이들을 위해 의미 없는 박물관 위주로 관광을 하게 되는데 유익한 것도 없고 어른들은 분위기 있게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며 “3박4일 중 하루 정도는 아이들끼리만 제주를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제주에서 즐길만한 교육적인 관광 프로그램을 계획한 뒤 전문 보육교사와 연계해 6세 이상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연령대별로 나눠 키즈투어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비단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아동문화시설이 부족한 제주에서 도민들도 이용 가능하도록 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안전’ 담보를 최우선으로 갖춰야 한다는 방향성도 잡았다.

도서산간지역이라는 이유로 가구 구매에 어려움을 겪었던 도민들을 위해 제주 최초로 이케아 물품 배송 대행 서비스도 진행한 바 있는 황씨는 “도민과 여행자,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아이디어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하고 싶은 게 많아도 가족을 가장 중심에 놓고 시간적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제주에 와서 산다는 게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고민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벚꽃이 휘날려 제주의 봄이 선명하게 보이던 날, 황씨는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맞이하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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