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라면 한 봉지의 평균 나트륨 함량은 1926㎎입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라면에 소금이 많이 들어갔다는 경고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신경이 곤두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이 2000㎎입니다. 따라서 라면 1봉지 끊여 먹으면 1일 권고 나트륨 섭취량의 96.3%가 됩니다.”

지난 12일 ‘혼밥’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하는 이 얘기를 듣고 경계심이 커진 이유는 내가 혈압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순환기 내과에 진단을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담당 교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 괜찮습니다만 나트륨 섭취 좀 줄이시지요.”

나의 건강 얘기를 하려고 위의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물론 라면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요즘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혼밥’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혼밥족, 즉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1순위 메뉴가 바로 라면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도 나트륨 섭취를 줄여야 하겠지만, 라면 회사도 혼밥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제품 만들면서 나트륨 첨가량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건 정책의 문제다.

대한의사협회 산하에 국민건강보호위원회가 있다. 국민에게 올바른 의학지식을 제공하고 국민의 건강에 대한 지식, 태도, 습관을 높여주는 사회적 책무를 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다. 이 기구의 한 분과로 있는 식품건강분과위원회가 지난 12일 전문가 세미나를 열었는데 그 주제가 바로 ‘혼밥’이었다. 윤영숙 인제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이행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건강노화산업단장, 김미자 서울문화예술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이수현 소비자시민모임 실장 등 4명의 혼밥 전문가가 분야별로 조사하고 연구한 것을 발표했다. 혼밥의 실태, 영양과 건강, 사회적 추세, 혼밥 식단의 문제점을 들으면서 혼밥이 늘어나는데 비해 생산과 소비만 있지 국민보건이나 유통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성세대에게 ‘혼밥’은 말 그 자체가 감각적으로 와 닿지도 않지만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식구나 배우자가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우울한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식구가 큰 테이블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밥을 먹는 광경이 가장 정상적인 식사 형태라는 것은 기성세대의 뇌리에 뿌리박힌 사고라 해야 할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에 단편적으로 쏟아지는 기사를 보며 “혼밥은 이혼이나 배우자 사망 등으로 마지못해 혼자 식사를 하거나 노량진 취업학원 주위에 사는 지방학생들의 우울한 라이프스타일”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혼밥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사회 추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혼밥은 1인가구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가운데 27.2%를 차지했다. 2000년 15.2%에 비해 거의 배나 늘었다. 혼자 살면 혼자 밥을 먹게 될 확률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것을 보면, 30년 뒤인 2045년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36.3%로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따라 노인 1인 가구가 급증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혼밥의 증가 또한 확실해 보인다.

1인 가구 증가 추세 외에도 직장 여건이나 취향에 따라 젊은이들이 혼밥(혼자 식사하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행(혼자 여행하기)을 선호하는 풍조가 뚜렷이 늘어나고 있다. 혼밥이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로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혼밥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조금씩 등장한 게 2014년이라고 한다. 불과 3년 만에 이렇게 확산된 것은 소셜미디어(SNS) 영향이 크다 할 것이며 혼밥이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혼밥이 늘어나다 보니 그 생산 및 유통 구조도 급격히 달라지고 있고, 기존의 외식 레스토랑의 판도마저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혼밥용 도시락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편의점 매출이 증가하는가 하면 패밀리 레스토랑의 퇴조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라면의 나트륨 함유량과 같은 혼밥족의 식품건강과 정신건강이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를 판이다.

이제 혼밥은 단순히 흥미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사회 정책 이슈로서 다뤄져야 할 것 같다. 혼밥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이에 필요한 입법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행히 의사협회 주최로 5월 16일 국회에서 ‘혼밥’ 문제를 갖고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1인 가구 시대의 혼밥은 고령화 시대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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