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9. 노희섭 제주도 정보융합담담관
정보통신기술 활용 해법 제시…공공·민간 협력 필요성 강조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전문성으로 신세계 I&C TF 총괄팀장, SK M&C 팀장, 다음 커뮤니케이션 팀장, KT NexR 본부장 등 대기업 요직을 지낸 젊은 남성이 스스로 제주도에 내려왔다.

2015년 개방형 직위인 제주도 정보융합담당관에 임명된 노희섭씨(42·제주시 이도동)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기업에 비해 연봉도 훨씬 적고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고개를 돌린 이유는 변화의 바람이 부는 제주에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싶어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변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상적인 방향들만 맴도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아내와 두 아이 모두 즐거워하는 제주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은 그는 일주일에도 수차례 육지로 출장을 다니며 ‘더 나은 제주’가 되기 위한 방향을 찾고 있다.

◇ 소외 받았던 제주, 키워드만 난무
서울에서의 삶은 2주에 한 번씩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버거웠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정신없이 일을 하던 그의 마음에 불현듯 ‘제주도’가 들어왔다.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제주에서 미래지향적인 움직임을 펼쳐볼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씨는 “공무원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는 있으나 ICT나 기술영역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측면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주도 정보융합담당관에 공모한 이유를 밝혔다.

제주에 와서 노씨가 가장 안타까웠던 건 그동안 제주도가 정부로부터 소외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노씨는 “10여년 전 제주가 특별자치도로 지정되고 국제자유도시 지향점까지 잡으면서 기틀이 마련됐는데 이후에는 아예 방치됐었다”며 “기름을 넣어줘야 하는데 방향만 있고 추진력이 없다보니 공무원들은 기회나 경험을 많이 잃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보니 도전 자체를 안 하는 상황이 됐고 느긋한 성향들 속에서 제주도의 발전은 더디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 큰 노력 없이 현재의 양적 성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연간 1600만 명을 넘어서고 제주 이주열풍이 붐을 이루기까지 제주도는 천혜 자연환경만 믿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노씨는 지금의 제주도를 놓고 “공허한 키워드만 난무하고 키워드를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빅피쳐나 디테일한 플랜, 로드맵이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제자유도시’, ‘평화의 섬’ 등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늘 겉도는 이야기만하고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씨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키워드만 난무하다.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내용들을 갖고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며 “생산적인 논의로 끌고 가려면 디테일에 대한 부분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노씨는 “데이터는 무시할 수 없는 팩트이기 때문에 이걸 기준으로 의견을 교환하다보면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디테일 플랜을 만들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제주에서는 데이터 관점으로 논의를 하고 현황을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굉장히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교류해야만 제주 섬이 산다”
 

노씨는 제주가 ‘섬’이라는 점에 집중하며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섬은 역사학이나 지리학적으로 봤을 때 고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교류를 한다. 문명과 단절된 섬이 아닌 이상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섬이 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과 장점을 잘 못 살리고 있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교류를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그는 단편적인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소프트웨어 중심의 3차 산업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씨는 “이주한 분들 중 소프트웨어적인 부분들에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자본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섬 안의 섬처럼 움직이고 있는 사회적 자본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차원의 장치 마련보다 우선돼야 할 건 민간 스스로의 움직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씨는 “공공에서 교류회를 만들 순 있겠지만 그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결국엔 도민들이 이주민들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이주민들도 도민들과 섞일 수 있는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를 통해 실제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CT를 통한 제주 발전을 위해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씨는 “공공은 민간의 고민이나 디테일을 따라갈 수 없다. ICT 영역에서 공공이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은 구분돼야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며 “그 사이에서 접점과 협력 모델을 잘 만드는 것에 모든 일의 해법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더 이상 ‘테스트 베드 아일랜드(Test bed island)’가 아니라 미래를 최초로 경험할 수 있는 ‘얼리 액세스 아일랜드(early access island)’로 제주의 정체성을 바뀌고 싶다는 노씨는 “이주민이자 제주도의 정책을 함께 수립하는 중간자로서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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