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기저귀 수발·목욕·이발…장수사진 봉사도
어버이날 ‘장관상’ 홍재병씨 “오래 계셔주시길”

“여기 보세요! 찰칵!”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경로당에서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홍재병씨(60·서귀포 대정)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모두 다 내 어머니 같아서”라고 말하는 홍씨.

8년째 경로당이나 요양원 어르신들을 상대로 장수사진(영정사진)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는 올해로 80세가 된 어머니가 계신다.

2003년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는 뇌병변장애1급 판정을 받고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게 되셨다.

어머니와 함께 산 건 그때부터다.

대정읍 무릉리 안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짐을 꾸려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식이 결혼하고 나면 한 집에 살더라도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나눠 따로 밥을 지어먹는 게 제주도의 문화인 만큼 부모를 보살필 것을 강요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도 많았다.

그런데 그가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어머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드리고 싶어서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답답해하시던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는 걸 극구 거부하셨고 “얼마 못 살더라도 살던데 계속 살다 갈란다”라고 말씀하셨다.

이혼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과연 혼자서 어머니를 보살필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도 컸지만 요양원에 모시면 어머니의 상태가 더 나빠질 것만 같아 곁에서 모시기로 결심했다.

2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휘청거리지 않고 꿋꿋하게 사시던 어머니가 한 순간에 쓰러지자 그동안 큰아들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아기가 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았다.

기저귀를 가는 일부터 시작해 목욕과 이발까지 챙겨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시설관리를 하는 홍씨는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필요해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부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몇 년을 가지 못했다.

홍씨는 “어머니 성격이 세서 일일이 맞추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활동보조인에게 의지해서 본인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계셔서 활동보조인을 그만 오게 했다”며 “걷지는 못하지만 엎드려 다닐 수는 있을 정도인데 조금이라도 움직이셔야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씨는 수고롭지만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는 7㎞. 어머니 점심을 챙겨드리고 함께 옆에서 식사를 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걸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적응이 돼서 당연한 일상이 돼 버렸다는 홍씨.

그는 미용기술까지 배워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드리는가 하면 주말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바닷가나 들판으로 산책을 나간다.

한 주 내내 힘들 법도 하건만 그는 “양변기 좀 고쳐달라”, “읍내까지 좀 태워다 달라”는 등 이웃 할머니들의 다급한 요청에 싫은 내색도 없이 도움을 드리곤 한다.

“모두 다 내 어머니 같아서 도움을 드리는 게 기쁘다”고 말하는 홍씨의 또 다른 낙은 사진 찍기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찍기는 이제 ‘모슬포카메라클럽’ 회원 자격으로 전시회를 열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다.

2016년 방어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서귀포 풍경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펼쳤다는 홍씨는 “어머니가 사진을 보고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갈고 닦은 사진기술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요양원에 가면 그 행복은 2배가 됐다.

수줍게 카메라 앞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고, 홍씨는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얻어가는 게 더 컸다.

‘이대로의 삶도 괜찮다’ 싶었지만 다시 가정을 꾸려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50세가 넘어 필리핀 여성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생활이 답답했던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홀연히 필리핀으로 떠나버렸고, 홍씨는 돌아오겠다는 말을 굳게 믿은 채 다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홍씨는 “어머니는 본인의 남은 재산을 다 내 몫으로 돌리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며 “그저 지금처럼만 치매 걸리지 않고 나와 아이들을 기억하며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홍씨는 어머니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고 지역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오는 12일 제45회 어버이날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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