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10.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
원주민·이주민 성급한 일반화 지양…느림의 미학 강조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지금 제주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시골도 대도시도 아닌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요. 제주다움이 사라져서 나중에는 '이주의 섬'이 아니라 '떠나는 섬'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요.”

1990년 서울에서 제주 출신 남편을 만나 제주로 이주한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53·제주시 연동)은 27년간 겪고 느낀 삶을 고스란히 담아 ‘제주 이주민의 역사’를 발간했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바다를 건너온 이들의 삶에 궁금증을 느꼈고,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과거의 상황에 비춰봄으로써 어떻게 미래에 접근해야 하는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요즘 그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키워드는 ‘공존’이다. 원주민과 이주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야만 제주다움을 지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 “나무 때문에 숲을 욕하지 말라”
정 소장이 제주에 온 건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주말부부라는 개념이 드물 때여서 결혼을 하면 으레 한쪽을 따라 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서울 토박이인 정 소장에게 제주는 낯선 것 투성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놀란 건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시부모님은 안거리(안채), 자식 내외는 밖거리(바깥채)에 따로 부엌을 두고 밥을 해먹는 일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제주 여인이 며느리를 배려해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문화라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았다.

정 소장을 가리켜 ‘육지 것’이라고 불렀던 마을 사람들도 자주 얼굴을 보고 말을 건네자 어느새 마음을 열어줬다.

이웃삼춘들은 직접 수확한 무나 호박, 바다에서 잡아온 작은 생선들을 툭툭 건네며 반찬거리를 챙겨주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는 몽골의 지배에서부터 시작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속절없이 당했던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살아가면서 차차 알게 됐다.
 

정 소장은 “제주 사람들은 배타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안고 온 이주민들이 손도 한 번 제대로 내밀어보지 않고 섣불리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만약 제주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제주사람 전체가 아니라 개개인의 문제라고 늘 바로잡아 준다”고 말했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원주민들도 이주민들을 싸잡아 비판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정 소장은 “한 이주민이 마을을 헝클어트려놓고 간 사례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주민들은 다 그렇다고 비판을 하더라”며 “이주민들이 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빴던 거라고 정정해서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성급한 일반화로 서로의 존재를 밀어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이 ‘제주 이주의 역사’를 되짚어 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원주민들에게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깨닫게 하고, 이주민들에게는 제주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하고 싶어서다.

◇ “다음을 내다볼 줄 아는 창조 필요”
 

정 소장은 서로에 대한 이해 다음으로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고민하고 있다.

정 소장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은 낮은 임금에도 제주의 자연환경에 반해 ‘적게 벌어 적게 쓰고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제주행을 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자본의 영향으로 치솟는 임대료와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제주살이를 접고 떠나는 이들이 종종 있다는 게 정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 제주 인구가 60만명이 조금 넘는데 앞으로 100만명이 되면 과연 그때 제주도민들이 행복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도 쓰레기에 교통난에 난리인데 한정된 땅에 사람들을 자꾸 끌어들이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무조건적인 인구유입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게 아니라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 적정인구가 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육지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할 게 아니라 제주만의 느림의 미학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정 소장은 물줄기의 방향을 사람과 자연의 ‘공존’으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논리에 부합하기 위한 개발도 중요하지만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창조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목소리다.

정 소장은 “개발을 아예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정도로만 하자는 것이다. 적어도 용역을 위한 용역은 지양해야 한다”면서 “자연과 문화에 대한 공동보존의 노력을 통해 제주를 공존의 섬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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