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영지학교 고영란 교사, 특수교사 첫 대통령 표창"
다름과 차이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자리 잡아야

"장애라는 건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는 것,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아요. 더욱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우리 아이들에게 장애란 없어요."

특수교사로서는 제주도지역 최초로 스승의 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제주영지학교 고영란 교사는 지난 26년간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며 이 같은 소신을 밝혔다.

그동안 일반학교 특수학급과 중도·중복장애 학생들이 모여 있는 특수학교를 분주히 오가며 얻은 교훈이 있다면 교육은 믿음과 협력이라는 것.

그는 "특수교육에 있어 아이 보다 교사가, 부모가, 사회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장애학생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름과 차이를 존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사가 특수교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은 친오빠를 가장 곁에서 지켜보며 특수교사의 꿈을 키워 온 그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딸을 뭍으로 유학 보낸 부모의 용기와 응원도 큰 힘이 돼 줬다.

그렇게 고 교사는 공주사범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첫 실습시간, 그는 장애학생들이 다가올 때면 움찔거리기 일쑤였다.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특수교사가 될 수 있을까'. 반성 어린 고민도 계속됐다.

그러나 마음의 벽은 곧 허물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목소리만 듣고 와서는 '예쁘다'고 칭찬하고, 일상 대화 조차 힘든 지적장애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포옹하는 모습 속에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 교사는 "당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했을 뿐인데 맑고 순수한 아이들이 제게 준 보상은 너무나도 컸다"며 "이때의 경험은 교직생활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어진 교직생활은 쉽지 않았다. 고 교사가 교직에 입문한 건 1990년. 당시는 특수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시설과 환경, 교육자료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때였다.

그는 직접 교과별 교수학습자료와 교재·교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애 유형·정도에 따른 개별화 교육이 시급했던 만큼 더욱 열성적으로 매달렸다.

고 교사가 개발했던 자료들은 현재까지도 일선 학교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수교육 학습모형 정립에 큰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당시 학습자료 전시회 등을 통해 보급에 힘써 온 결과였다.

진로·직업 교육에도 주력했다. 성인이 된 장애학생들의 독립된 생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판단이었다. 글짓기대회·정보화대회·기능경진대회 등에 학생들을 수차례 출전·입상시키면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 왔다.

고 교사의 제자들은 학교 졸업 후 호텔, 세차장, 세탁소, 음식점, 페스트푸드점 등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고 교사는 "매년 이맘때면 전화로, 편지로 안부를 묻는 제자들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며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물론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가슴으로 품었던 제자들이 그간 앓던 장애가 심해지면서 하늘로 떠나가기도 했고, 장애에 대한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질책 또는 면박을 당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고 교사는 "아이들을 믿고 교사와 학부모, 사회가 협력할 때 비로소 장애학생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며 사회 구성체 전반의 노력과 관심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현재 제주영지학교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고 교사는 교직원,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와 함께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시행하면서 모든 장애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고 교사는 "제가 무엇을 잘해서 상을 받았다기보다는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특수교사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대표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자와 후배들을 위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교직생활을 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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