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벌써 여든인데…힘들어 죽겠습니다."

짙은 안개 속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4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의 한 마늘밭.

나이 지긋한 70~80대 노인들이 동그랗게 웅크려 앉아 바지런히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매년 오뉴월 농번기면 응당 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작업 중 쉼이 잦다고 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수확을 도와줄 일손이 없어서다.

품앗이하러 왔다던 김모씨(77·여)는 "사실 비 오는 날에는 수확을 안 한다. 그런데 어쩌겠느냐. 하루라도 빨리 (마늘을) 걷어야 계약량을 맞출 수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늙은이들끼리 도와줄 수밖에…"라며 한숨을 쉬었다.

1k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마늘밭. 양모씨(80·여) 부부는 호미를 들고 한참을 밭 앞에 서 있다 그대로 뒤돌아섰다. 도무지 6600여 ㎡(2000여 평)를 기어다니며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양씨는 "정말 걱정이다. 올해는 육지 사람, 외국인들도 찾아보기 힘들어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일손이 없어 마늘밭 일부에 양파를 심기 시작했는데, 내년부터는 양파 재배면적을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는 전라도·경상도와 함께 우리나라 마늘 주산지로 꼽히는 곳이다. 도에 따르면 현재 도내 마늘 재배면적은 2182ha, 농가 수는 3500여 농가다. 도내에서도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대정읍·안덕면에서 주로 재배된다.

제주시 조천읍 마늘농가의 경우 대부분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보다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서다. 올해 마늘 수매단가도 사상 최고가인 ㎏당 3200원으로 결정되면서 지역 내에서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문제는 일손이었다. 일당 7만~8만원에 웃돈까지 얹어줘도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 도내 여유 인력들이 이미 대규모 개발지에 취업한 데다 중국인 등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대거 도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김보홍 조천읍 신흥리장은 "그동안 해병대로부터 대민지원을 받아 마늘을 수확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훈련을 비롯해 서귀포시에서 열리는 FIFA U-20 월드컵대회 등에 장병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일손이 더욱 부족해졌다"고 설명했다.

서귀포시의 경우 수확이 일찍 시작돼 80% 가량 수확이 마무리된 상태다. 그러나 포전거래, 이른바 밭떼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면적(대정읍 기준)이 2016년 절반 수준인 330만여 ㎡(100만여 평)에 그쳐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김영자 대정농협 이사는 "타 지역산 작황이 좋은 데다 단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업계에서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비가 오지 않으면 다음달 6일이면 판매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지만, 일손이 부족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가늠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제주도·제주시·서귀포시 공무원을 비롯해 농협·경찰·해군·농업인단체·대학생 봉사단까지 5000여 명이 마늘농가 일손돕기에 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협에 따르면 현재 3만 여 명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제주지역 마늘 생산량은 2만8413톤으로, 전년(3만1129톤) 보다 8.7%나 줄었다. 전국적으로 마늘 생산량이 3.5% 증가한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실제 도내 곳곳에서는 마늘 농사를 포기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마늘의 경우 기계화율이 사실상 제로 상태여서 일일이 손으로 수확해야 하는데 일손부족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정읍에서 마늘농사를 짓고 있는 강모씨(50)는 "마늘밭을 물려 받아 3년째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데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해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당장 내년부터 재배작물을 바꿔볼 생각이다. 주변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마늘 농가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현재 관련 기계화 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제주의 경우 지리적 특성상 자갈·암반이 많아 기계작업 자체가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송인관 원예경영 연구담당은 "육지부 일부 마늘 생산지에서는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제주는 사실상 (기계작업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재 비교적 땅이 평탄한 대정·한경 지역에 우선 파종기를 보급하고 있는 만큼 공정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농가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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