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11. 민복기 행복나눔제주공동체 사무국장
“관점의 차이 이해하고 과거·미래 고려해 다름 인정해야”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예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죠.”

2015년 2월 제주에 이주해온 민복기씨(36·제주시 한경면)는 제주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인용했다.

제주의 진보정당, 지역운동,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행복나눔제주공동체’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도민사회의 중심에 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고민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제주에 대한 솔직한 의견들을 수집하는 ‘톡톡제주(talk talk jeju)’ 캠페인을 기획한 것도 바로 이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 ‘관점의 차이’에 대한 이해 필요
 

서울에서 정책홍보컨설팅과 공익광고기획 등을 하던 민씨는 정작 본인은 사라지고 쌓아놓은 것들을 소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 싫증을 느꼈다.

철학을 전공해서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던 민씨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결혼과 함께 제주행을 택했다.

제주가 좋아서 이주를 택했다는 남들과 달리 민씨가 제주를 택한 이유는 공익의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삶의 패턴 자체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 또한 민씨를 제주로 이끌었다.

회사가 제주시내 한복판에 있는데도 출·퇴근이 1시간씩이나 걸리는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집을 구하자 직장 동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처음 관점의 차이를 느꼈다. 서울에서는 당연한 출·퇴근시간인데도 제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마을의 가로등을 설치하는 일도 관점이 달랐다.

동네 밤길이 어두워 가로등 설치를 요구했지만 면사무소 직원은 가로등 불빛이 농작물 생육에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며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주민들은 원래 밤에 잘 안돌아 다녀서 미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어두운 밤길에 익숙해지기로 한 민씨는 “나는 불편할 수 있지만 주민들 입장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당연히 또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줄곧 이곳에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탐탁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환경개발사업과 관련해서도 “나는 개발을 반대하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풀밖에 없는 마을이 살기 좋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찬성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른 걸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통의 갈증 ‘다름의 인정’으로 풀어가야
 

이주민과 관광객이 급증한 제주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민씨는 KT&G제주본부와 제주청년협동조합과 손을 잡고 ‘톡톡제주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

민씨는 “선주민과 이주민, 관광객들은 세대 차이부터 시작해 성향 차이, 문화적인 차이까지 개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며 “선주민이 이주민과 관광객에게 갖는 오해, 이주민과 관광객이 선주민에 대해 갖는 오해가 많지만 제대로 말할 공간이 없어서 소통 창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톡톡제주’는 제주에 살면서, 제주로 이주하면서, 제주를 관광하면서 불편했거나 행복했던 경험 또는 제주의 주요 현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온·오프라인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직장 내에서는 주로 선주민들과 어울리고 아내가 직접 만든 공예품을 내다파는 플리마켓에서는 이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서로를 향한 갈증을 파악했기에 기획할 수 있었다는 게 민씨의 설명이다.

민씨는 “경험해보니 선주민들은 이주민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이주민들도 선주민을 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일부러 찾아가는 일이 없는 것일 뿐”이라며 “이들에게 접점을 찾아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바랐다.

이어 “모아진 의견들이 정책으로까지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단초를 열어주고 쌓인 데이터를 통해 또 다른 매체로 이어져서 더 깊게 활용됐으면 한다”며 “문제에 대해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교집합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소통 창구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 삶을 여기(제주)서 어떻게 조화롭게 녹여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민씨는 선주민과 이주민이 서로를 바라볼 때 그의 과거와 미래까지 함께 왔다는 것을 잊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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