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끝난다. 대통령 선거와 문재인 정부 출범 등 정권교체의 격류 속에 정신없이 흘러간 한 달이었다. 나라 밖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동안 중국에서 의미심장한 국제행사가 있었다. 바로 시진핑 (習近平) 국가 주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 포럼’(One Belt One Road Summit Forum)이었다.

5월 14일과 15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이 포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29개국 정상과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등 130여 나라 고위 인사 1500여명이 참석했다. 미국과 인도 그리고 주요 유럽국가 정상들이 의도적으로 불참했다. 아마 다분히 중국의 원맨쇼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이리라. 해서 서방 언론의 평가는 짰다. 그러나 처음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은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잠재력이 드러난 행사였던 것 같다.

‘일대일로’는 이제 중국의 미래 국가전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용어다. 2013년 가을 시진핑 주석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여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구상을, 그리고 남중국해, 남태평양, 인도양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제시했다. 육상실크로드는 ‘일대(一帶: One Belt)’이고, 해상실크로드는 ‘일로(一路:One Belt)’를 뜻한다.

‘실크로드’(Silk Road)란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리히트호펜이 19세기 중국 한대(漢代)의 동서교역로를 탐험하고 붙인 이름이다. 육상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의 진귀한 물품과 문화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수출되었던 조공무역의 교역로였다. 한마디로 고대 동서 문명의 통로였다.

또 명나라 때 정화(鄭和)의 대선단이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탐험함으로써 세계사에 남는 해양 탐험의 기록을 세웠고 이 해양 루트를 일컬어 해상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진핑이 구상하는 ’일대일로’는 바로 과거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현대적 경제 블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중심이 되어 유라시아 경제를 묶어 호혜적인 역내 경제를 발전시키는 ‘21세기 신(新) 실크로드’ 개념이다. 2049년까지 무려 1조 달러를 투입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중국해, 인도양 연안국가에 항만, 공항, 철도, 고속도로, 가스관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과잉 생산되는 철강 등 중국의 공산품을 수출하는 길을 닦는 작업인 셈이지만, 종국적으로는 중국이 유라시아 경제권을 이끌고 나가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오늘의 중국은 그 4000년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 40년 동안 고속 경제 성장을 지속해서 ‘세계의 공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약 11조 달러 경제 규모로 미국(18조 달러)에 이어 제2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체제를 이루며 국제정치와 세계경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아직도 무엇에 목말라하고 있는 걸까? 경제적으로 더욱 부강해지고 싶어 한다. 8000 달러대인 1인당 국민소득을 5만7000 달러의 미국 수준으로 올리고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대등한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싶다. 더 나아가 중국은 사해(四海)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일대일로’의 완성은 중국 꿈(中國夢)이자 심모원려(深謀遠慮)의 국가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많은 문지방을 넘어야 할 것 같다. 중국의 부상에 곱지 않은 세계의 시선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서방국가들은 물론 인도와 아시아 역내 일부 국가들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으로 경계하고 있다. 유럽은 반쯤 발을 담그고 눈치를 보고, 미국은 거의 외면하고 싶어 한다. 중국이 커질수록 미국의 세계 지배력은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이며, ‘일대일로’ 구상의 주인공인 시진핑 주석은 민주적 지도자가 아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신뢰와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인류보편의 가치체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대일로’는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추진력인 건만은 분명하지만 주도하는 중국의 리더십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지속적인 국제협력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일대일로’ 구상이 구체화할수록 그 영향은 한국에 미칠 것이다. 유라시아를 통합하는 경제권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일대일로’의 중심권에 포진할 위치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일대일로’ 지도상에서 한국은 아직 벗어나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중국이 미묘한 한반도 문제를 감안해서 한국을 ‘일대일로’ 선상에 적극 포함하는 것을 삼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돈줄의 하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 중국이 중심이 되고 세계 70여국이 투자하여 2016년 1월 개설되었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주도해 만든 세계은행(IBRD)이 유럽의 전후복구 계획인 마셜플랜의 자금줄 역할을 했듯이, AIIB는 ‘일대일로’ 경제블록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이다. 한국은 AIIB의 자본금 3.5%를 투자하여 중요한 발언권을 확보했고 한국인 부총재직이 내정됐다고 홍보했으나 나중에 프랑스인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의 곤욕을 치렀다.

AIIB와 기획재정부는 6월 16일부터 사흘 동안 70여 회원국 대표와 취재진 등 2000여 명이 참석하는 제2차 연차 총회를 제주도에서 개최한다. 멀리는 ‘일대일로’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고, 단기적으로는 AIIB에서의 발언권 확보를 위한 시험대가 되는 국제회의란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게는 만만찮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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