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재개 1년 이상 걸려 생계비 걱정에 '막막'

"제가 잘못했습니까? 그런데 왜 저를 죽이십니까?"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애지중지 키우던 가금류 2100여 마리가 살처분된 제주시 조천읍 양계 농가 주인 고모씨(65)가 8일 오후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자마자 하소연했다.

이날 원 지사는 AI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조천읍 농가 반경 3㎞ 이내에 포함돼 예방적 살처분된 농가들을 찾아 위로하고 협조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2012년 뒤늦은 나이에 토종닭 사육을 시작한 고씨와 그의 부인은 지난 6일 자식이나 다름없던 가금류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키우던 가금류들은 AI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 예방적 차원의 살처분이였다.

농가와 원 지사의 만남은 농민의 하소연과 타박으로 시작했다.

원 지사가 "AI가 뚫리기 전에 막았어야 했는데 고쳐 나가겠다"고 말하자 "날마다 고치겠다고만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고씨는 원 지사의 양팔을 움켜주더니 잠긴 목소리로 "지사님 잘하셔야 합니다. 제가 화가 정말 많이 나서..."라고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원 지사는 면목 없다는 듯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고씨를 바라보기만 했다.

고씨는 "왜 아무말도 못하느냐. 하루 2~3마리를 식당 등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인데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농가가 다른 지역에서 건강한 닭을 들여와 알이 부화하면 그 병아리를 키우기까지의 과정은 어림잡아도 1년은 걸린다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고씨는 "살길이 막막하다. 모아놓은 돈이 있나. 다른 일자리가 있나"라며 "살처분 보상도 보상이지만 재기할 동안 무슨 돈으로 살아야 할지 더 걱정"이라며 적절한 보상과 함께 생계비를 요청했다.

고씨의 부인도 "판매용 닭은 물론이고 애완용으로 키우던 닭들까지 살처분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살처분 농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고씨는 살처분 과정에서 앞뒤 바뀐 방역 절차를 항의하기도 했다.

그는 "AI 검사를 한다면서 오늘 시료를 채취해갔는데 살처분한 날 했어야지 이틀이나 지나서 하는 건 순서가 바뀐 것"이라며 "사람들이 헤집고 다녀 농장에 누가 바이러스를 전염시켰을지 모르는데 이제와서 시료 채취가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원 지사와 동행한 제주도 김경원 축산과장은 "맞는 말이다. 정신이 없고 인력도 모자라다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사과했다.

원 지사는 "살처분 닭은 최대한 보상하도록 노력하고 생계비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고씨 부부를 달랬다.

고씨는 "다시 농장일을 시작하면 안심하게 닭을 기를 수 있게 철저히 관리해 청정지역 제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제주도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AI 발생 농가 및 AI 양성반응을 보인 농가 4곳과 그 주변 반경 3㎞ 내 농가 34곳을 대상으로 총 14만5095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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