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신원확인 절차 중단…국토부·공항공사 발만 동동
불만·우려 봇물에도 수수방관…대책 마련 시급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가 충분한 사전 준비작업 없이 ‘신분증 미소지자 항공기 탑승 불가 정책’을 강행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신원 확인 대행 업무를 해주던 경찰이 지난 2월 말 업무 중단을 통보한 뒤 4개월간 기간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채 정책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여권을 분실했을 경우에는 각 영사관 또는 대사관을 통해 24시간 365일 여권 재발급이 이뤄지는데 국내선의 경우 주민센터가 문을 닫으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어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 신원 확인 대행 업무 왜 중단 됐나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1일부터 제주공항을 비롯한 전국 14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 탑승 시 신분증이 없으면 항공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신분증이 없어도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해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을 떼서 제출하면 공항경찰대의 신원확인 절차를 걸쳐 탑승이 가능했지만 경찰이 이날부터 해당 업무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경찰청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경찰이 공항 내에서 탑승객들의 신분 확인 업무를 맡아온 건 1968년께부터다.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이후 이듬해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면서 경찰이 갖고 있던 공항 보안검색 감독권이 한국공항공사로 넘어갔지만 경찰의 신원 확인 업무는 계속됐다.

신분증 미지참자에 대한 신원 조회는 경찰 전산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항공보안법상 신분증 없이 탑승이 불가하지만 한국공항공사와 경찰은 이용객들의 편의를 고려해 주민등록등·초본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초 시행된 경찰청 자체감사에서 해당 업무가 법적근거 없이 이뤄지고 있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경찰은 지난 2월 말 해당 업무에 대한 중단을 한국공항공사와 국토부에 통보했다.

중단 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국토부는 지난 3월 한국공항공사와 경찰청, 국정원 등 관계기관을 소집해 개선책을 논의했으나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로 경찰은 지난 5월 업무 중단 강행을 통보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는 5월 말부터 공항 내 입간판과 언론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불편을 줄이기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외에 공무원증, 국가기술자격증, 복지카드, 국가유공자증, 선원수첩, 교원자격증, 전역증도 신분증으로 인정되도록 국가항공보안계획을 개정하기도 했다.

◇ 대책 왜 마련 안됐나…관계기관 머리 맞대야
 

문제는 본인도 모르게 신분증을 분실하거나 도난당했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중에는 주민센터에서 임시신분증(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확인서)을 발급 받으면 가능하지만 주말이나 공휴일, 야간에는 행정 공백이 생겨 꼼짝없이 발이 묶여야 있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시행 첫날인 지난 1일 토요일 대구에 가기 위해 제주공항을 찾은 제주도민 이모씨(34·여)는 주민센터가 문을 열지 않아 임시신분증 발급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날 공항에서 만난 제주도민 김모씨(42)는 “신분증을 예고하고 잃어버리는 것도 아닌데 행정공백이 생기는 주말이나 휴일 임시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놓지도 않고 국내선 통로를 막아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일방통행식 방침을 비판했다.

제주공항에 취항하고 있는 항공사들의 대표기구인 ‘제주국제공항 항공사운영위원회’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제주공항 항공사운영위원회는 “제주 같은 경우 관광객들이 여행 중 신분증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말에는 아예 탑승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 항공사들도 난감한 입장”이라며 “일단 시범운영기간을 갖고 불편을 수렴한 뒤 개선책을 마련해 시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신원 조회 권한이 없는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임시신분증 발급은 지자체에서 해주기 때문에 공항 내에 출장소를 마련하는 방안이 고려됐지만 갑자기 시행되는 바람에 인력·장소·장비 등에 대해 논의할 겨를이 없었다”며 “홍보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제주도는 “아직 별다른 요청을 받은 건 없다. 인력·예산 확보 등의 문제가 따를 것”이라면서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건 좋지만 시행 전에 합법적인 제도 정비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항공보안과는 “법적 근거가 없는 건 맞지만 40년 넘게 이뤄졌던 절차를 (경찰이)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한 건 사실”이라며 “신분증이 없어도 탑승이 가능한 생채인식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와중이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보안성과 편의성을 위해 여객수가 높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제주공항 등에 홍채인식 등 생채인식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데이터를 구축해 사용화 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의 이용객들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국토부와 공항공사, 경찰청을 비롯해 공항 보안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전국 공항 출발승객 기준 하루 평균 약 660명(전체 평균 이용객의 0.8%)이 신분증을 미소지한 채 비행기에 오르고 있으며, 제주공항의 경우 하루 평균 370여명 꼴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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