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에만 혈안…안전검사 인프라·기준 마련은 뒷짐
6000대 달리는 제주도 달랑 3곳…수리·정비 수개월 소요

제주에서 전기차를 이용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3월 중순 서귀포시에 출장을 다녀오다 1톤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정비소로 간 A씨는 그곳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전기차는 제조업체 직영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할 수 있고 정비 물량이 밀려있어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는 설명을 들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 B씨도 최근 전기차를 몰고 퇴근하다 제주시 이도동 소재 한 도로에서 접촉사고로 차량 범퍼가 부서져 서비스센터에 맡기며 최소 2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황당했다.

2011년부터 전기차 보급을 시작한 제주는 2016년말 기준 6000대가 넘는 전기차가 보급됐다. 전국 전기차의 52%가 제주에서 달리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전기차 1만대 시대를 열고 2030년까지는 도내 모든 차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보급 초반 추첨을 해야 할 정도였던 전기차의 인기는 점점 주춤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전기차 운행 인프라가 부실한 점도 하나로 꼽힌다.

특히 위 사례들처럼 안전과 직결된 수리와 정비 문제가 소비자들의 전기차 선택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자동차 정비업체는 530곳, 정비검사원은 1697명이다.

제주에서 전기차 수리와 정비가 가능한 곳은 현대와 르노 삼성 직영 서비스센터 각 1곳씩 2곳과 도내 5개 자동차정비업체로 꾸려진 한국전기차정비협동조합 정도에 불과해 안정적인 검사는 한계가 있다.

전기차 검사장비는 약 2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 비해 수요는 부족해 업체들이 설치를 꺼리고 있다.

현대차 서비스 가맹점인 블루핸즈도 고전압, 절연시험, 전자기기 진단장비 등이 없어 전기차 관련 전문적인 정비를 할 수 없다.

다른 제조사 전기차나 외제차는 전문적인 정비를 받으려면 부품을 통째로 교체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송해야 한다.
 

설령 장비를 갖춘다해도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도내 전기차 전문인력은 7명이 전부다. 한국폴리텍 대학이 연간 160명을 대상으로 전기차 관련 교육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전문과정이 아닌 기초 교육 수준이다.

전기차 검사 기준도 명확지 않다.

제주를 비롯해 전국의 전기차는 별도의 관련 법이 아니라 자동차관리법에서 정한 자동차 검사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 검사는 24개 장치 53개 기준인데 해외에서는 전기차를 16개 장치 63개 기준을 적용해 큰 차이를 보인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만 혈안이 되고 가장 기초적인 안전 문제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이후부터는 1000대 이상의 전기차가 정기 의무검사 대상이 돼 전기차만을 위한 검사 기준 관련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현재의 전기차 검사 기준이 적정한지 개선 방안을 찾는 연구용역을 전문기관에 의뢰해 올해말쯤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전기차 보급은 환경부, 전기차 관리는 국토부로 이원화한 구조인 점도 보급과 인프라 확충이 엇박자를 내는 이유로 지적된다.

제주대학교 1만3647㎡ 부지에 178억원(국비 93억원, 지방비 85억원)을 들여 전기차 안전검사지원센터를 구축한다는 제주도의 계획도 진전이 없다.

정부가 기존 김천에 있는 첨단자동차검사연구센터와의 중복성 문제와 전기차 정비가 공적 영역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기차 안전검사 문제는 제조업체인 민간에서 다뤄야 할 부분이기도 해서 공적인 기관을 설치하는 게 옳은가를 검토하고 있다"며 "환경부와 국토부의 전기차 업무 이원화 부분도 양 기관이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허창옥 의원은 "정부가 전기차를 보급하면서 안전성은 소홀한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며 "정기검사 대상 전기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상당한 문제가 생길수 있는데 전기차 정비를 생산업체에만 맡기면 객관성이 떨어져 이용자들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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