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매월 2회 요양원서 노래·산책 봉사활동
“도울 수 있어 행복…체력 다할 때까지 계속할 것”

“우리도 (치매) 대기자잖아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할 따름이죠.”

12일 오후 제주의료원 도립노인요양원에서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였다.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 부설 노인대학원 학생 14명은 나이를 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고, 이를 지켜보던 노인들은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2011년부터 대학원 내에서 노인자원봉사클럽 노래동호회를 이끌어온 김창훈씨(84)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호응을 유도했다.

동호회가 도립요양원을 찾은 건 2013년부터다.

적게는 74세부터 많게는 84세까지로 구성된 회원들은 매월 둘째·넷째주 화요일마다 치매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발걸음을 하고 있다.
 

주특기인 노래 공연은 기본이고 볕이 좋은 날에는 함께 야외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면 모일 일이 없지만 봉사활동은 빠트리는 법이 없다.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마음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 고진옥씨(75)와 함께 5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 회장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노래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어 우리가 더 행복하다”며 “노래와 이야기를 준비하는 과정들이 우리에게 젊음을 선사해주고 있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김 회장은 이어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뭉클하면서도 더욱 힘이 난다”며 “나이는 많지만 마음만은 청춘이기 때문에 필요로 할 때까지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노인대학원 학생회장이자 동호회 일원인 최덕호씨(76)는 “아무래도 같은 세대이다 보니 공감대가 형성되고 다른 봉사자들보다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손을 잡으면 끌어당기면서 놓지 않으시는데 기대고 싶은 벗을 필요로 하는 간절한 표현인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최씨는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도 (치매) 대기자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허전함을 느낀다. 보호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우리들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는 “한 달에 2~3명꼴로 저세상으로 가버려서 마음이 아플 때도 많지만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서 매순간이 소중하다”며 “그저 삶의 과정에서 내 기쁨을 위해 시간을 활용했을 뿐인데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집에 두고 나와야만 하는 김신선씨(75·여)는 “하루 정도 빠질까 생각이 들다가도 나보다 더 연세가 있는 회원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한다”며 “나는 그저 따라가는 사람일 뿐이지만 함께 하는 이들의 마음이 알려져 귀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봐 온 사회복지사 전미영씨(49·여)는 “돌봄을 받으셔야 할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셔서 요양원 직원들도 보고 배우는 게 많다”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책임감을 갖고 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김치민 제주도립노인요양원 사무국장은 “요양원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70대에서 80대이신데 동년배의 봉사자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표할 때가 있다”며 “정신이 드실 때마다 또 언제 오느냐며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다”고 전했다.

어느새 예정됐던 한 시간가량이 훌쩍 지나고 봉사자와 입소자들은 아쉬운 눈빛을 주고 받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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