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15.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이성빈·박진석
농촌 향한 관점 전환 시도·해외 관광객 끌어오는 플랫폼 구축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파릇파릇한 청춘을 제주 최남단 시골마을에 풀어놓은 이들이 있다.

경상도에서 농사와는 무관한 일을 하던 안창근(37)·이성빈(34)·박진석씨(26)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내려와 돌담 사이사이로 말을 건넨 건 2016년 6월부터다.

‘청년’과 ‘공동체’ ‘여유’라는 가치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은 농사야말로 삶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 제주의 매력을 키워 세상에 말을 걸고 싶었던 이들은 마을 안에서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하 글제문)’을 꾸려 운영하기 시작했다.

1년 새 조합원이 20명으로 늘어나고, 자연생태문화체험장으로 거듭난 옛 무릉동분교에 둥지를 틀기까지 글제문은 서귀포시 대정읍 곳곳에 재능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농사는 고되고 고리타분한 일’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뙤약볕 아래로 나온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의 가치를 알리며 더 많은 청춘을 제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 ‘농사는 재밌다’…관점의 혁신 시도
 

글제문 조합원들은 이사장인 안창근씨와 이사 이성빈씨를 제외하고 모두 20대다.

경상도부터 시작해 서울, 경기도, 전라도 그리고 미국인까지 출신지도 다양하다.

20일 대정읍 무릉리 글제문 캠프에서 만난 이성빈씨와 박진석씨는 아침 일찍 텃밭 일을 마치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들이 처음 제주에 왔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겠다는 새파란 젊은이들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육지것들이 뭐 얼마나 하다 가겠어’라는 반신반의한 마음 때문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일당을 받지 않고 마늘 수확과 감귤 따는 일 등을 도왔고 마주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자꾸 말을 건넸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거나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도 먼저 달려갔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6개월 뒤에는 함께할 공간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방치돼 있던 자연생태문화체험장을 캠프로 쓰도록 허락했다.

일손이 부족했던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상모리 이장은 “젊은 감각으로 해보라”며 송악산 아래 위치한 농산물 직판장 ‘알뜨르 농부시장’ 운영까지 맡겼다.

마을에서 생산한 고구마, 마늘, 감귤, 한라봉 등 건강한 먹거리에 톡톡 튀는 마케팅이 더해지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농작물의 가치를 잘 알기에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단순하게 늘어놓고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익살스러운 홍보문구와 농기계 포토존, 버스킹 공연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온라인 판매에도 나섰다.

감귤박스를 나를 땐 힙합음악을 BGM으로 깔고 한라봉을 이용해 아령을 만드는 등 저마다의 개성으로 농사일을 즐기자 다른 마을에서도 이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박씨는 “땀을 흘리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문화를 입혀 판매하면 그 가치가 더해진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인데 농촌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며 “육지에서는 내 생활의 반찬이 3가지였다면 제주에서는 12첩 반상을 먹는 느낌”이라고 농촌 생활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다른 마을에서도 우리 활동을 보고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알뜨르 농부시장을 2호점, 3호점으로 늘려가며 마을사람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를 평생 터전으로 생각하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내려왔다는 이씨는 “농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혁신을 시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우리의 활동을 통해 농사를 고되게만 생각하던 청년들의 시각을 바꿔 더 많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발길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면서 “우리 사회에 커뮤니티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농사만큼 함께의 가치가 크게 작용하는 건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마을에 동력 불어넣을 ‘플랫폼’ 구축해야
 

글제문의 활동이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본인들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마을에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데 있다.

자연생태문화체험장에 글제문 캠프라는 이름을 내건 이들은 외국인과 육지 청년들이 농가 일손을 도우며 제주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국형 제주 워킹 홀리데이’ 체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미국, 덴마크, 홍콩, 대만, 몽골 등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이 글제문의 소개로 제주에 머물다 갔고, 현재는 30여명의 타 지역 청년들이 마을에서 일을 하며 제주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

기존에 제주에서 진행됐던 워킹 홀리데이는 한국 청년들에만 국한돼 있었던 데다 일회성으로 열리는데 그쳐 정작 농촌에서 일손이 필요할 땐 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제주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해외 친구들이 많은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포메이션이 없다보니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이들이 올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면 농촌 일손 부족 문제 해결과 외국인 개별관광객 유치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 내에 숙소와 캠프파이어 등 각국 청년들이 제주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지만, 보다 쾌적하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청년과 농촌을 향한 행정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글제문의 목소리다.

이씨는 “귀농귀촌프로그램도 단순히 설명을 하는 차원에서 그칠 게 아니라 단 한 달만이라도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제주에서 무얼하며 살 건지 생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싼 광고를 하는 것보다 외지인들이 제주에 머물다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들이 SNS을 통해 주변인들에게 소개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글제문 캠프에 7개월간 다녀간 인원만 2000여명.

최소한의 운영비를 받는 것 외에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있다보니 아직까지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머물고 있지만 글제문은 이 시간과 노력들이 쌓여 머지않아 탄탄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제주의 밭에서, 농부시장에서, 캠프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박씨는 “젊기 때문에 무모해져도 되고 우리가 가진 패기로 못할 게 없다”며 “우리는 지금 제주에서 각자의 삶에 거름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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