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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탈(脫) 원전의 진통
News1
며칠 전 친우 서너 명과 저녁을 함께했다. 그 자리의 화두(話頭)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脫)원전’ 정책이었다. 일생 동안 진보적 정치 성향을 보였던 한 친구가 탈원전 정책을 옹호했다.

“새 정부가 나타났는데 새 정책이 시행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장기적으로 원전을 줄여나가는 건 바람직한 일이야. 그런데 말이야,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원전 건설을 중단하자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일으키는 파장이 크다. 원전 산업계 및 학계가 보수 언론 매체의 지원을 받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비판의 도화선은 공정률 28%인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하도록 의결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파행적 이사회 모습을 TV뉴스로 전해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 한수원이 비밀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습 이사회 개최가 쓴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한수원은 5,6호기 공사 잠정 중단을 의결하기 위해 하루 전 경주 본사에서 이사회를 개최하려다가 한수원 노조와 주민들의 데모사태로 좌절됐다. 한수원은 이튿날 호텔방으로 몰래 장소를 옮겨 기습 이사회를 열어 ‘공사중단계획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투명한 절차를 강조하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 초다. 이런 정부 아래서 공기업이 정부정책 수행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를 열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시절 국회에서 종종 보았던 구태의연한 수법을 동원한 것이 한편으론 안쓰러웠고 또 한편으론 한심해 보였다.

둘째, 과거 누구도 그 존재의 위엄을 부정할 수 없었던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원자력발전의 질서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정권교체의 바람이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정책변화의 일선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뭔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수원이 어떤 회사인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25개의 원자로를 통해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전력의 30%를 생산하는 공기업으로 줄곧 원전을 확대만 해왔다. 한수원 이사들은 정부의 원전 확대정책을 지지하고 원자력 기득권을 누려온 사람들이다. 사내이사 6명과 사외이사 7명이 과거 정부에서 선임된 사람들일 텐데, 1명만 반대하고 12명이 공사중단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짐작하고 남는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으로 이사들은 물론 한수원 조직 전체가 이미 융단폭격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런데 5,6호기 공사 잠정중단을 의결한 한수원 이사들의 뒷얘기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니 국민이 보기엔 어지럽다. 모두들 잠정적으로 공사중단에는 찬성했지만 두 원자로 건설 공사를 영구히 중단하는 것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는 반대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수원 사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만만찮은 후유증이 예고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면서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는 공론화, 즉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는 공론화가 결말 날 때까지 잠정 공사중단을 의결했고, 산업통산자원부는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협조 공문을 한수원으로 보냈고, 한수원 이사회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잠정 공사중단을 의결한 것이다.

공론화 또는 시민배심원단 결정은 얼핏 듣기에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 에너지 문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를 이 문제를 놓고 시민배심원단의 인선과 의견수렴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관심거리다.

지금 이 이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공론화를 들고 나온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영구 공사중단을 내심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배심원단이 대통령을 비롯한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양식에 따라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그 집행 전략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임명되고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구상을 국민에게 제시하기도 전에 국무회의가 공정률 28%인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공사중단을 덜컥 의결한 것은 현명한 것일까.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여부 결정은 탈원전 정책의 한 부분이다. 대통령 언급대로라면 시민배심원단의 결론에 따라 공사를 계속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들 원자로 2기가 탈원전 정책의 핵심이슈가 되어 버렸다. 두 원자로에 대한 시민배심원단의 결론이 순조롭게 국민여론을 수렴하는데 실패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과 같은 혼란을 초래할 공산이 높다.

과거 우리나라 보수 정권의 에너지정책 기조는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이었다. 값싼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는 게 목표였고 그래서 화력발전과 원자력 발전 건설에 힘을 쏟았다.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이 지적되었으나,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산업자원부 담당자의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잘 수밖에 없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철학과 기조가 종전 정부와 다르다. 에너지 문제를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은 경제보다 안전이다. 과거 경제적 효율성에 우선을 두었던 에너지 정책을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탈원전 정책뿐 아니라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며 노후 석탄화력 폐쇄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만 아니다. 7월초 독일 함부르크 G-20정상회의 참석하여 파리기후협정을 지지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37% 감축하기로 한 전 정부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속속 폐기하는 문재인 정부지만 유독 파리기후협정에서 약속한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국제사회와 함께 지구온난화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하겠다는 신호다.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 구상은 겉보기에 이상적이다. 방사능 누출 공포에 떠는 사람에게는 탈원전을, 미세먼지를 우려하는 사람에게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에너지 정책에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다.

파리기후협약을 염두에 둔다면 화석연료를 줄이는 대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하고, 방사능 공포를 줄이려면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국가 에너지원의 혼합(MIX), 즉 화석연료, 원자력, 재생에너지 혼합 비율은 정부가 미래를 내다보고 국민정서까지 염두에 두고 현명하게 짜야 할 에너지 백년대계의 틀이다.

에너지 문제는 이념의 문제도,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에너지 혼합, 즉 선택의 문제다. 선택 조건이 단순하지 않다. 환경, 안전, 경제성, 대체성, 지속성, 국민정서까지 반영된 종합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원전은 방사능 누출 사고 가능성과 사용후폐기물처리의 난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확대하는 것은 한국현실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를 급격히 감축시켜야 하고 여기서 파생되는 전력 부족분을 재생에너지가 채워줄 수 있을 때까지 원자력은 안전성과 청정성 확보를 전제로 완충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기간이 문재인 정부의 ‘원전제로’가 완결될 때와 합치되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 에너지 문제를 담당한 사람들은 이런 걱정도 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5, 6호기 공론화 과정이 미래세대를 위해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에너지 정책을 깊고 넓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1 고문>

  jjy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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