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16. 뮤지션 ‘제주갑부훈’ 염정훈
여행·음악으로 삶의 물꼬 트고 기부·나눔으로 가치 더해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진짜인 척하던 가짜의 영민한 아이가 욕심을 도려내고 제주 거지가 되어 진짜로 사는 법을 배우려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제주의 숲 속에서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온다.

‘제주갑부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염정훈씨(32·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의 목소리다.

2011년 잡지사 기자라는 허울 좋은 명함을 던져버리고 도망치듯 대구라는 도시를 빠져나온 이유는 진짜인 척하는 가짜의 삶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진짜가 되자’는 숙제를 배낭에 구겨 넣은 채 제주로 향해 온 염씨는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거짓이 없는 제주의 자연에서 자신만의 ‘터무니’를 찾기 시작했다.

터무니는 '터'와 '무늬'를 결합한 말로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한다.

“모든 터에는 저마다의 무늬가 있다”는 어느 건축가의 철학에 사로잡힌 그는 그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자신을 둘러싼 생태계를 파악하기에 나섰다.

몸도 마음도 비어있는 채로 왔기에 ‘제주거지훈’이라는 이름을 썼던 그가 최근 ‘제주갑부훈’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유는 제주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 ‘터의 무늬’를 찾아서 온 제주 
 

단출한 배낭을 메고 제주 용담해안을 걷던 염씨는 돌비석에 적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詩)에 마음을 뺏겼다.

이전에는 무심히 흘려보냈던 시구(詩句)가 새삼스레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믿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보이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염씨는 “내가 누구인지 터의 무늬도 모른 채 집을 짓던 내 안의 건축가를 해고했다”며 “어릴 적 배고픔도 잊은 채 미쳐 있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제주에서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머리카락을 기르는 일이었다.

소아암 치료센터가 없는 제주에서 소아암 환우에게 가발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넘길 때쯤 제주 한 바퀴 여행을 떠났고,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가위를 건네며 소아암 환자를 돕는 일에 함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기꺼이 마음을 나눠준 이들 덕분에 100만원이라는 기부금이 모였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갔다.

무엇이 자신의 인성에 자양분이 됐는지 흘러온 시간을 살펴보던 염씨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던 어린 날을 끄집어냈고, 음악을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소라게’ ‘난 가끔 그런 생각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귤나잇’ 등의 곡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악기와 목소리를 더해 ‘제주거지훈과 노노들’이라는 밴드로 활동했고, 작은 카페 공연부터 시작해 지역의 축제까지 그의 노래를 찾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경제적인 수익도 얻게 됐다.

그렇게 음악은 염씨와 사람들을 잇는 매개체이자 삶의 물줄기가 됐다.

◇ 자연에 진 빚을 갚는 삶
 

염씨는 제주를 가리켜 “살아있는 거대한 위인전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만하면 인생 참 잘 살았다는 예를 위인전을 통해 볼 수 있는데 그들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정답으로 존재한 게 바로 자연”이라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꾸짖지 않는 꽃, 소나무와 선인장이 함께 자라는 월령리 바다, 생명을 틔우기 위해 돌을 뚫은 비자나무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으로부터 불안을 치유하고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자연에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곶자왈과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버려진 전선과 캔뚜껑들은 염씨의 손을 거쳐 키홀더로 재탄생했고,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 ‘이보쇼 제주갑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시 사람들의 손에 안기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수익금의 30%는 소아암 환우와 지적장애아동, 해외 난민학교 학생들을 돕는데 쓰인다.

“나 혼자 잘 나서 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다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게 염씨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염씨의 선한 영향력은 다른 뮤지션과 디자이너들의 동참을 이끌어내 1년에 한 번씩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돌며 나눔의 의미를 알리는 ‘다(多)가치, 달리는 소나기’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염씨는 “소득의 반은 노동한 나의 것이고 나머지 반의반은 도움이 필요한 내 이웃의 것이고 남은 반은 나의 친구와 가족의 것”이라며 “그랬더니 내 터의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라 갑부가 됐다”고 말했다.

왕년에 얼마나 잘나갔는지를 얘기하며 으스대거나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에 기뻐하며 제주에서의 삶을 누리는 이주민들도 많지만, 본인만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염씨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부자가 된 듯 보였다.

“자연으로부터 갑부가 되는 법을 배우며 거지의 자유와 갑부의 여유를 두루 갖춘 균형 있는 삶을 지향한다”는 염씨는 그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며 진짜 자신의 집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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