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간염 소시지, 부작용 생리대 등 충격적인 소식이 사흘이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일주일 전 음식점에서 순두부를 시키자 종업원이 날계란을 들고서 풀어 넣을 건지를 물었다. 먹는다고 별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지만, 즉흥적으로 돌려보냈다. 식품에서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먹고 쓰는 것이 과연 안전한지 정말 노이로제에 걸린 지경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언론이 불안을 침소봉대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DDT 같은 금지 살충제가 실제로 농장에서 사용되어 왔는데도 정부 당국이 눈을 감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 식품안전에 대한 당국의 대처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며칠 전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마 지난 정권에서 보였던 공무원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문득 살충제 계란 사태에 미숙한 대응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총리로부터 질책을 받은 식품의약안전처장이 떠올랐다. 현대사회의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에 대한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의 책임자로서 고도의 전문성, 행정능력, 위기대응능력이 있는지, 언론의 필터를 통해 보았을 때는, 의구심이 들었다.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공무원의 영혼이 있는지도 의문스러워 보였다. 공직자들의 미숙한 사태수습 능력이 불안을 더욱 키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초반에 방문한 곳이 미세먼지가 심한 초등학교와 고리1호 원자력 발전소 폐로 선언식 자리였다. 그가 그곳에서 강조한 것은 ‘안전’이었다. 갑자기 안전하지 않은 식품과 물품이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시대 분위기와 국민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이 예민해졌고 따라서 언론도 민감해졌다. 안전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책임자들이 전문지식과 통찰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얼마 전 ‘퀘스트’(탐구:Quest)라는 책을 보았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니엘 욜긴이 쓴 역작이다. 그 책 내용 중에 50년이 넘은 먼 나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오늘의 식품안전 문제와 꼭 부합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교훈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현재 어느 나라 자동차 회사든 미국에서 자동차를 팔아먹으려면 캘리포니아의 오염배출 기준을 통과하는 게 선결 과제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연방 정부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한 자동차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배출기준을 이렇게 높여 놓은 사람이 에리 하겐스미트라는 생화학자였다.

1948년 어느 날 LA 외곽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공대(Caltec)의 생화학 교수 에리 하겐스미트 박사가 시험관에 파인애플을 담아 놓고 성분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식물의 향기와 맛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연구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연구실 밖 베란다로 나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뭔가 폐를 찌르는 것 같은 따가움을 느꼈다. 악명 높던 로스앤젤레스(LA)의 스모그가 캠퍼스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그 순간 하겐스미트 교수는 중대한 심적 변화를 일으켰다. LA 스모그의 원인을 화학물질 분석 방법으로 밝히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당시 스모그의 주범을 놓고 산업시설, 소각장, 자동차 등으로 의견은 분분했지만 아무도 과학적으로 그 원인 물질을 규명하는 데 앞장설 생각을 못했다.

하겐스미트 교수는 파인애플을 시험관에서 꺼내 버린 후 스모그를 생성시켜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LA 스모그의 주범이 바로 자동차 배기관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LA의 생활 스타일로 자리 잡은 자동차가 스모그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하겐스미트를 비판하는 논평이 쏟아졌다. ‘과학계의 돈키호테’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하겐스미트의 연구 결과는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LA는 한쪽은 바다에 면해 있고 나머지는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사막의 분지다. 차가운 바다 공기가 따뜻한 분지의 공기 속으로 파고들며 일종의 대기 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태양 광선에 광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생성된 스모그가 LA 분지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갇히게 된 것이 그 정체였다. 이 발견으로 하겐스미트는 나중에야 ‘스모그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 결과에 대해 정책결정권자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고, LA의 스모그는 더 점점 심해졌다.

LA의 인구와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1954년 10월 초 전례 없던 스모그 재앙이 찾아왔다. 목구멍이 타는 듯 아팠고, 눈이 따가웠으며, 호흡기 질환이 번졌다. 고속도로에서는 가시거리가 짧아 자동차 충돌사고가 속출했고, 공항이 폐쇄됐다. 스모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가도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10여 년간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주지사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자동차 사용을 자제해주도록 요청하는 게 고작이었다.

1967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1980년 대통령당선)은 대기오염을 혁신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대기자원위원회(CARB)를 창설했다. 그리고 20년 전 스모그오염물질을 규명했던 67세의 노(老) 과학자 하겐스미트를 찾아 그 위원장에 임명했다. 하겐스미트의 지배 아래 들어간 CARB는 엄격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기준이 엄격했던지 자동차회사 사장들은 하겐스미트를 가리켜 “자동차 산업을 죽이고 살리는 판사이자 배심원”이라고 혹평했다.

그 때 미국 연방정부는 스모그 피해가 극심한 캘리포니아 주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다. 즉 연방정부의 배출 기준보다 훨씬 높은 배출기준을 법규로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주로 하여금 캘리포니아 기준을 적용하든지, 연방정부 기준을 적용하든지 택일하게 했다. 당시 캘리포니아가 미국 자동차 판매의 12%를 차지했기 때문에 CARB의 권위는 거의 연방 정부의 힘과 맞먹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 회사들로서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면서 배출기준을 두 개로 만들 수가 없어 CARB 규제 기준으로 미국 내 판매 모델을 통일했다.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외국 제조사들도 CARB의 배출규제 기준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이란 표를 따를 수밖에 없던 탓인가. 자동차 산업의 강력한 규제완화 요구에 레이건 주지사는 1973년 하겐스미트를 해직했다. 그러나 하겐스미트가 6년 동안 초석을 깔아놓은 CARB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CARB의 배출규제가 기술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하면서 자동차의 연비 효율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그 덕택에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국 도시의 대기 오염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CARB의 초대 위원장에 스모그의 정체를 밝힌 과학자 하겐스미트를 발탁해 전권을 맡긴 레이건 주지사의 용인(用人)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의 본질을 깊이 알고, 그 문제 해결에 대한 방법과 열정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발탁해서 신뢰하고 일을 맡기는 결단이 바로 오늘날 권력을 가진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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