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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베네수엘라 망조(亡兆), 석유의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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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는 200여개의 독립국가가 있다. 중국같이 14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태평양의 가라앉는 섬나라 투발루는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우리나라 면단위 크기의 소국이다. 모든 나라가 저마다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고, 문제의 성격에 따라 백성들의 고통 양태도 다양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가 하면, 미국은 허리케인 ‘하비’ 가 투하한 물 폭탄에 600만 도시가 1주일 이상 노아의 방주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도 있다.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장교 195명을 장군으로 진급시켰다. 이 나라엔 별 계급장을 단 현역 장성이 2000명이 넘는다. 주지사 23명 중 11명, 장관 23명 중 11명을 현역 또는 퇴역 장군이 차지하고 있다. 남미의 베네수엘라 이야기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자원 부국이다. 그 자원을 지키기 위해 그 많은 장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미는 아시아나 유럽과 달리 국가 안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장군이 넘쳐나는 것일까. 장군들이 국경을 지키는 게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보위하는 방패막이로 필요하기 때문에 선심성 진급이 양산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정치적 혼돈과 경제적 파국에 의해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차베스의 좌파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즉 석유 생산과 판매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머니를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한 게 아니라 서민들에게 주택 식량 교육을 공짜로 제공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실시하여 차베스에게 열광했던 대중의 지지를 잡아보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차베스 같은 카리스마도 없었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석유값 폭락이었다.

차베스는 집권한 후 한때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했던 고유가로 막대한 복지 재정을 감당하고 쿠바 등 이웃 나라에 원조까지 하며 반미 노선을 주도했다. 그러나 마두로가 정권을 승계한 이후 석유값은 3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오직 오일 달러에만 의존했던 마두로의 포퓰리즘 정책은 석유값 하락으로 파탄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실시된 총선에서 마두로의 집권여당은 야당연합에 패배하여 의회다수당 지위를 빼앗겼다. 정치적 불안정은 더 악화했고, 물가는 폭등했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예측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720%다. 실업률은 25%가 넘는다. 식품, 생필품, 의약품은 동이 나고 서민들은 인플레 때문에 생필품을 살 수 없게 됐다. 장치산업인 석유 시설은 노동자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업자가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처음에 중산층이 브라질 등 이웃나라로 떠나더니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고 있다.

먹고 살 게 없으면 당연히 민란의 싹이 트기 마련이다. 먹을 것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와 함께 마두로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가 지난 1월 ‘대통령직무유기’결의안을 채택하자, 마두로는 지난 3월 측근세력인 대법원을 시켜 의회해산 판결을 내리고, 지난 7월 말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마두로 자신의 집권연장을 하기 위한 정치적 쿠데타였다. 차베스 정권부터 재임했던 루이사 오르테가 검찰총장은 제헌의회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며 부정선거 수사를 발표했다. 화가 난 마두로는 제헌의회로 하여금 오르테가 총장을 해임케 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도탄에 빠져있다. 반정부 시위로 올해 13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군인들도 일부 동요하고 있지만 마두로의 철권통치와 이권 배분으로 군부는 아직 마두로에 대한 충성을 접지 않은 모양이다.

우고 차베스 전대통령은 장교 시절 군부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경험이 있다. 그가 1999년 선거에 의해 집권한 후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해 군을 달래고 회유하는 작업을 했다. 장군들에게 석유시설을 관리하게 하고 각종 이권을 내주었다. 전임자를 따라 마두로 대통령도 군부를 달래는 갖가지 특혜를 주고 있지만 그 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가 망조에 든 것을 보며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50년 전 베네수엘라 민주정부에서 석유장관을 역임한 페레스 알폰소는 1970년대 석유값의 폭등으로 베네수엘라 재정수입이 4배 증가하여 국민들이 붕 떠 있을 때 독한 논평을 낸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20년 후에 석유 때문에 우리 국민이 파멸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40년 전 기억에 남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인상은 ‘석유가 많이 나서 잘사는 나라’ ‘유럽에 스위스가 있다면 남미에는 베네수엘라가 있다'다.

마두로 정권은 군부의 지지를 받기 위해 환전 등에서 고위 장교에게 특혜를 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액은 100억 달러다. 연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채무가 42억 달러에 이르렀고 자칫 올가을 디폴트(지불불능)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세계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미 민주화가 진전된 이웃 남미 국가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인권탄압에 매우 비판적이다. 미국 정부도 마두로 정권에 대한 금융 제재 등 압박을 가하고 있으면 최근 군사 조치까지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도 쉽지 않다. 자칫 남미 국가들의 반미감정을 부추길 수 있는데다, 남미에 지배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유전에 침을 삼킨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베네수엘라에 6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31일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유전에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은 150억 달러를 투자하고 800개의 유전개발에 참여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두로는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하고 지불불능의 위기를 넘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석유를 팔아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그날그날 복지정책을 땜질하듯 유지해온 베네수엘라가 이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려면 석유값의 폭등이라는 요행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의 국토는 남한의 10배가 되고 인구는 3100만 명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갖고 남미의 모범적 민주국가로 발전할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았는데, 이렇게 망조(亡兆)가 든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석유 때문일까, 지도자 때문일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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