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18. 홍민아 더파란 대표
실속 있는 공연기획…민간합창단 꾸려 재능나눔도

[편집자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거리 한 귀퉁이에 50여년간 잠들어있던 ‘서귀포관광극장’에서 2015년 봄부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붕괴 위험에 천장이 뜯긴 극장에는 바람과 햇볕이 자유롭게 들어와 앉았고, 지역주민뿐 아니라 관광객, 외국인들까지 찾아와 관람석을 가득 메웠다.

무대 위에서는 뮤지컬 ‘카르멘’부터 ‘갈라’까지 다양한 문화공연들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항상 홍민아씨(44·서귀포시 서귀동)가 있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서울에서 예술고등학교와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상대로 보컬트레이닝을 했고, 뮤지컬과 무용에까지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다 여행을 떠나온 제주와 사랑에 빠지면서 1년여간 상사병을 앓았다. 2013년 9월 아예 짐을 싸들고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주 5년차가 된 그는 ‘공연자’에서 ‘공연기획자’의 삶까지 더해져 제주도 곳곳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지역문화사업에 숨 불어넣기
 

지역아동센터와 안덕중학교 등에서 특별활동으로 공연예술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서 홍씨를 찾는 공연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연에 대한 틀도 없이 다짜고짜 무대에 오르라는 경우가 많았다. 어설픈 공연을 펼치기 싫었던 그가 공연 기획에까지 참여하게 된 이유다.

무대에 오르는데만 익숙했던 그는 예산과 인재가 부족한 지역문화사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획부터 연출, 공연, 사회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서귀포시 원도심 활성화 사업 위탁을 받은 서귀포지역주민협의회의 일원으로 서귀포관광극장에 뮤지컬을 올리게 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업체 ‘더파란(The PARAN)’을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공연기획에 뛰어든 그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콘텐츠로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제주교향악단 단원 중심으로 구성된 현악연주팀 앙상블나인과는 서귀포관광극장에서 비발디의 ‘사계’ 연주공연을, 첼리스트 예지영씨와는 아라뮤즈홀에서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의 밤)’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서귀포 중문의 한 캠핑장을 빌려 ‘다짜고짜 제주영상제’도 펼친다.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찍은 영상을 스크린에 걸고 레드카펫을 밟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익살스러운 기획 의도가 담겼다.

“행사를 위한 행사는 싫다”는 그는 조선시대 거장 김만덕의 나눔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된 ‘김만덕 나눔 큰잔치’와 제주전통문화유산 가치를 알리기 위한 ‘제주 무형문화재 한마당’을 준비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홍씨는 “무게감이 실린 행사인만큼 단편적인 부스 일색의 행사가 아니라 제대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실속있는 행사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그간 갈고 닦은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순간인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 ‘댄싱어즈 창단’으로 재능나눔…예술학교 설립 꿈
 

문화예술의 섬 제주의 면모를 살피는 JIBS ‘문화로그 왓’의 진행을 맡아 방송인으로도 활동했던 다재다능한 홍씨의 최종 꿈은 무엇일까.

올해 2월부터 민간 합창단 ‘댄싱어즈’를 창단해 매주 수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있는 그는 ‘즐거운 나눔’에 집중하고 있다.

‘댄싱어즈’ 소속 단원 19명은 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제주도민들로,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저마다 다르다.

홍씨는 “노래뿐 아니라 즉흥춤, 연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걸 뭐든지 나누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일만 하느라 자기 내면을 돌보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건강한 소리를 찾는 놀이를 하고 있다”며 “예술은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콘텐츠”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는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주에 작은 예술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홍씨는 “예능계통의 아이들조차 생각이 딱딱하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죽으나 사나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를 가치있는 일에 투자하고 싶다. 정식 인가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래를 심는 일로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좁은 제주에서 관계에 치어 가끔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날들도 있지만 아름다운 제주가 주는 위로는 그보다 더 크다”며 “바다가 자꾸 말을 걸어주는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며 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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