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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양돈 분뇨, 또 하나의 제주 환경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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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전 고등학교 동창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인간적 상실감도 컸지만,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는 평생 농촌을 생각하고 농촌이 잘 사는 방법을 실천하며 살았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수평선 위에 마라도가 가물가물 보이는 제주도 서남쪽 끝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나오자 ‘수원농대’(서울대농대)에 들어갔고, 대학을 졸업한 후 경기도에서 소를 기른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접촉이 소원해서 그의 행적을 잘 몰랐다.

1990년대에 서울 강남에서 친구들끼리 구룡산 등산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는데 식당 간판에 ‘도드람포크’라는 글자를 보더니 한 친구가 “길부 조합장네 돼지고기구나”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죽은 내 친구의 이름은 진길부(秦吉富). 그는 ‘도드람양돈협동조합’ 창설 멤버로 1~4대 조합장을 역임했다.

그의 양돈조합 경영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2008년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현 서울시장)가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옮기는 개척자들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는데, 그가 강연자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진 조합장은 한국 양돈업계에서는 개척자적 존재였다.

그는 덴마크의 농업협동조합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경기 이천에서 돼지를 기르는 예닐곱 명 안팎의 농가를 묶어 도드람양돈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를 기업형 조합으로 키운 사람으로 그 분야에서는 유명했다. 그의 양돈농장을 방문하고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두 가지 일화가 퍽 인상적이었다.

첫째 이야기는 돼지고기(돈육) 생산방식이다. 그는 농업선진국 덴마크에서 돈육생산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합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명의 덴마크 도축전문가를 한 달간 초빙했다. 왕복항공료와 숙식비 그리고 3000만 원의 기술 자문료를 지불했으니 조합원들의 불만이 꽤 높았을 법하다. 그러나 이들 덴마크 기술자들이 한 달 간 머물며 도축기술을 전수한 후 돈육의 맛이 좋아지고 무게가 더 나가면서 이들에게 지불한 기술료의 몇 배의 수익이 생겼다고 했다.

두 번째는 돼지분뇨 처리기술 개발 이야기였다. 돼지를 수천수만 마리 기르는 양돈장은 대량으로 쏟아지는 분뇨처리가 큰 문제였다. 악취와 오염이 주변에 큰 민원을 야기했다. 진 조합장은 연구원을 투입하여 톱밥과 미생물 배양으로 악취를 제거하고 분뇨를 퇴비와 액비로 자원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농장을 방문한 나에게 진 조합장은 컵에 담은 물을 건네며 “한번 마셔 봐. 돼지 오줌이야”라고 말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그럼 손이나 씻어봐”라고 말했다. 그물로 씻은 손을 코에 대도 냄새가 안 났다.

그때 나는 제주도의 양돈 분뇨 문제를 꺼냈다. 관광객들이 골프 치러 제주도 갔다가 분뇨악취로 코를 막고 돌아선다는 얘기를 해줬다. 진 조합장은 알고 있었고 사업을 벌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제주가 내 고향인데 분뇨처리를 잘 못하면 제주 양돈농가는 미래가 없고 제주도 지하수가 크게 오염될 것이다. 이곳 이천 도드람농장에서 개발한 분뇨처리 기술을 제주에서 적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4연임 후 조합장 자리를 그만둔 그는 양돈장 분뇨처리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제주도에 뻔질나게 다니면서 양돈농가와 담당 공무원들과 접촉했다. 진 조합장은 제주 양돈 분뇨 처리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양돈 농가들이 돼지분뇨를 ‘숨골’, 즉 화산암벽 사이에 생긴 구멍에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숨골은 빗물을 지하수계로 통하게 하는 물길이다.

진 조합장은 분뇨처리를 위해 제주에 몇 년 공을 들이는 듯하더니 이천으로 돌아가 버렸다. 양돈농가들은 분뇨처리 문제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고, 공무원들은 심각성을 느끼지만 법과 조례 탓을 하며 나서서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것을 보고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예산을 투입하면서 개선을 시도했지만 양돈농가와 공무원들의 마음이 실리지 않는 정책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흘렀다. 지난 9월 5일 방송 뉴스를 듣던 제주도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제주시 한립읍 상명리에 있는 길이 70m, 폭 7m의 용암 동굴 바닥이 온통 돼지 분뇨 오염수와 찌꺼기로 흥건히 차 있는 화면이 흉측스럽게 방영되었던 것이다.

채석장 암벽 틈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와 오수가 나오는 것을 발견한 주민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돈사 분뇨저장조가 넘치면 근처 숨골로 흐르도록 방치해놓은 것을 보고 불도저와 장비를 동원해 숨골을 추적했다. 그랬더니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용암동굴이 나왔고 이 동굴의 폐수가 지하수맥을 타고 인근 폐채석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찾아냈다. 숨골에 버린 양돈 분뇨가 제주의 특수 지질인 현무암 지하수계를 따라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이 수사결과 양돈분뇨를 불법적으로 버린 농장은 네 곳이며 2013년부터 4년간 버린 분뇨의 양이 무려 1만7000톤이나 됐다. 분뇨로 오염된 숨골은 원상회복에 수십 년 걸리고 환경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전수조사를 약속하는 등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지하수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제주도 흑돼지 붐을 타고 양돈장이 급격히 늘어난 게 2000년쯤이므로 지난 15년간 얼마나 많은 양돈 폐수가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는지를 미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주도에 상하수도가 완비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그 전에 주민들은 일부 도심지역을 제외하면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지하수, 즉 용천수를 음용수로 이용했다. 정말 오염이 없는 깨끗한 샘물이었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많은 해안가 마을의 용천수가 음용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질소성분이 과다했기 때문이다. 더 물어볼 것도 없이 지하수의 상류 중산간 지대에서 흘러든 축산폐수가 원인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불편했지만 위기로 느끼지 못했다. 상수도가 있고, 축산이 생업인 주민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는 시골 인심이 상존하기 때문이었다. 양돈농가들이 숨골이나 용암동굴에 축산분뇨는 물론 병들어 죽은 가축의 사체도 버린다는 건 그 일대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다.

제주도 가치의 최상위는 청정 환경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지금 환경 위기에 있다. 인간 활동과 그 방법이 자연의 수용 용량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양돈농가의 환경 오염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책과 공직자의 자세 전환이 절실하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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