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향토음식 1호 김지순 명인이 전하는 추석 차례상

추석 아침이 밝았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독특한 지리적 요인 탓에 명절 음식 역시 다른 지역과는 큰 차이가 있다.

추석을 앞두고 만난 제주도향토음식 제1호 명인 김지순씨(82)는 “제주는 곡식과 과일도 드문데다 유배지역이었던 탓에 차례상이 복잡하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출한 상차림을 소개했다.

김 명인에 따르면 제주의 추석 제수(제의 음식)는 동서남북 지역과 가풍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크게 메(쌀밥), 갱(국), 적(적갈), 편(떡), 숙채(나물), 전, 포, 과일, 제주(술) 등이 올라간다.

육지에서는 대추나 밤이 올라가지만 제주는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특징이다.

메는 쌀을 준비해 곤밥(쌀밥의 제주 방언)을 하고, 옥돔이나 우럭 등 흰살 생선으로 갱을 끓여 올린다. 생선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올리기도 한다.

육지에서는 탕이라 하여 육탕·어탕·소탕으로 3탕을 올리나 제주에서는 대부분 탕을 올리지 않는다.

대신 차례상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적’이다.

적은 네 발 달린 짐승 1가지(소고기나 돼지고기), 바다에서 나는 것 1가지(오징어나 상어), 들에서 나는 것 1가지(두부나 메밀) 등 총 3가지를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김 명인은 “세 가지 적의 의미를 모르고 가짓수만 맞춰서 차리는 경우가 많은데 소고기적과 돼지고기적을 함께 올리면 한 가지로 봐야 한다”면서 “서쪽은 콩이 많이 나서 두부적을 내놓고 동쪽은 땅이 척박해서 메밀적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적과 함께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전’이다. 전 역시 적과 비슷하게 산(주로 표고버섯전)과 바다(주로 동태전), 들(주로 호박전)의 것을 하나씩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 가지 전과는 별도로 ‘누르미전’을 올리는 것도 제주만의 특색이다.

길게 늘어뜨린 파와 고사리에 달걀물을 붓고 사각형으로 부쳐내는 누르미전은 귀신이 음식을 싸가기 위한 보자기로 사용한다는 속설이 있다.

김 명인은 “조상들이 음식을 맛있게 잡수고 돌아가실 때 남은 음식을 보따리에 싸서 가시라는 의미로 올리는 음식”이라며 “마치 지게처럼 생긴 고사리에는 싣고 가시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제주 차례상의 또 다른 특징은 5가지가 순서대로 올라가는 ‘떡’이다. 여기에는 신(神)들이 많은 제주만의 문화가 담겼다.

땅을 상징하는 ‘제펜(시루떡)’을 가장 아래 놓고, 그 위에 밭을 상징하는 ‘은절미(인절미)’를 올린다. 여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절변과 솔변(송편)’, 별을 상징하는 ‘지름떡(기름떡)’을 차례로 올린다.

김 명인은 “우리가 무심코 차례상에 올리는 떡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제주의 많은 신들을 상징하고 있다”며 “송편의 경우 반달 모양의 육지와는 다르게 달처럼 둥그랗게 만들어 한쪽을 약간만 눌러주는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현무암 지대인 탓에 벼농사가 힘들어 쌀이 귀했던 제주는 쌀떡 대신 보리떡(상애떡)을 올리기도 했다.

상애떡은 마치 술빵과 맛이 비슷한데 제빵기술이 발달한 뒤부터는 상애떡을 대신해 고급스러운 카스테라나 롤케익이 차례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육지에서 빵이 제사상에 오르는 일은 드물지만 제주에서는 흔한 것이 이 때문이다.

김 명인은 “70년대부터 제빵기술이 발달하면서 명절날 카스테라를 선물로 사들고 가던 걸 상에 올리게 된 것”이라며 “본래 전통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과일은 사과, 배, 귤을 주로 사용하지만 조상님에게 직접 재배한 과일을 선보이기 위해 바나나 같은 열대과일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요새는 대부분의 음식을 사서 차리는 경우도 많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고 차례를 지냈으면 한다”고 바랐다.

제주는 차례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밥과 국을 제외한 모든 제사 음식을 조금씩 싸서 나눠준다.

이를 제주방언으로 ‘찍시’라고 하는데 표준어로 하면 ‘몫’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각자의 몫을 안고 돌아가는 추석 저녁, 제주는 구름 사이로 환한 보름달이 보일 것으로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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