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택시가 있어도 겨우 4~5㎞ 가는데 요금을 10만원이나 달라고 하더라고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서 그냥 공항에서 잤어요.”

“수화물센터에서 1만원을 주고 박스를 사와 펼치고 잤어요. 제주에 처음 왔는데 이게 무슨 변인지 모르겠네요.”

제주에 32년 만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면서 23일 오후부터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이 전면 결항되자 체류객 1000여명이 24일 아침까지 제주공항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맨땅에 신문지나 종이상자를 펼친 채 잠을 청한 이들은 이날 오전 6시 ‘기상 악화로 인해 낮 12시까지 항공 운항 중단이 연장됐다’는 안내방송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7시,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던 김모(75·여·경북)씨는 “하룻밤만 새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도 비행기가 뜰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며 “가족 10명이서 함께 제주에 처음 왔는데 안 좋은 기억만 안고 간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수화물센터에서 1만원을 주고 박스를 사서 펼치고 잤는데, 이불도 없고 도대체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며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이용도 못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항공편 운항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에 항공사의 발권 데스크 근처에서 잠을 청한 박모(44·서울)씨는 “2살 아이와 74세 아버지, 65세 어머니와 맨 바닥에서 잠을 잤다”며 “대기 순번을 받아놓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공사에서 나눠준 담요를 겨우 구해 잠을 청한 박모(63·여·부산)씨는 “어제 2시35분 비행기를 탔다가 기내에서 3~4시간을 기다렸다”며 “그 좁은 공간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집에도, 숙소에도 가지 못해 공항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고 말했다.

잠들어 있는 6살, 9살 손주를 바라보던 박씨는 “아이들이 있어서 추위 속에서 택시나 버스를 오래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밤 10시쯤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보니 노형동까지 겨우 4~5㎞ 가는데 10만원이나 달라고 하더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박씨는 이어 “아무리 날씨가 안 좋아서 교통상황이 안 좋다고 해도 그런 억지가 어딨느냐. 기가 막혀서 포기하고 그냥 공항에 들어와서 잤다”며 혀를 찼다.

아이 5명, 어른 5명이서 제주에 여행 왔다 발이 묶인 유모(37·여·대구)씨는 “초등학교 2~3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들 3명이 당장 25일부터 개학인데 학교에도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오후 사정을 보고 학교 측에 연락해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 동료 7명과 함께 제주를 찾은 박모(44·경기)씨도 막막함을 토로했다.

박씨는 “직장 동료들과 토요일에 한라산을 오르려고 왔는데 한라산은 입산이 통제되서 못가고 공항에서 다 같이 노숙을 하고 있다”며 “7명이 한꺼번에 빠져 버려 회사 업무에도 차질이 생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씨는 이어 “어젯밤 숙소를 알아보러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를 돌아다녀봤지만 숙소 주인이 오죽하면 다른 곳도 방이 없어 돌아다녀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하더라. 비행기가 또 안 뜨면 당장 오늘 밤은 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세 아동부터 70∼80대 노인까지 1000여명에 이르는 승객들이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지만 푹푹 내리는 눈에 활주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시까지 제주공항의 활주로 운영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날 낮 12시까지 운항하기로 예정된 국내선 및 국제선 출·도착편 185편이 모두 결항됐다.

뿐만 아니라 25일 오전9시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고돼 24일 예정된 항공기 516편의 정상 운항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어서 전날에 이어 이용객들의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전날 제주에서 다른 지방으로 떠나려던 이용객은 총 3만4000명, 제주로 오려던 이용객은 3만4000명 등 총 6만8000명으로, 이 중 승객 2만여 명이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23일 오후 8시 기준 공항 체류객만 6000명(공항공사 추산)에 이르렀으며, 택시나 대중교통, 제주도가 제공한 40여대의 전세버스로 5000여명이 제주시내 숙소 등으로 빠져나갔다.

24일 공항 이용객 예정인원은 7만6000명(출발 4만명, 3만6000명), 25일 예정인원은 7만1000명(출발 3만6000명, 도착 3만5000명)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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