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22. 함주현 제주마을소도리문화연구소 이사
마을미디어 와들랑 운영으로 소통 연결고리 역할 톡톡

[편집자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작은 공동체들을 모아 소통하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에서 방송국 PD로 일하던 함주현(41)·최정은(37) 부부가 100일된 딸을 데리고 제주에 온 지도 벌써 7년이나 됐다.

2001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돌담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 ‘함피디네 돌집’을 차린 이들 부부는 “그때만 해도 제주에 이토록 많은 이주민이 오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때아닌 제주 열풍에 입소문까지 더해지면서 게스트하우스는 나날이 번창해갔지만 함씨 부부의 삶은 그리 풍족해지지 않았다.

바깥의 존재들을 모른 채 하고 살다보니 소통의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을 속에 들어가보자’는 생각으로 2013년부터 마을과 주민들에게 마음을 쏟기 시작한 이들 부부는 2017년 현재 제주시 구좌읍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우리 마을엔 누가 살고 있을까?’…소통의 시작
주민들과 소통 없이 살던 2013년쯤 전직 PD였던 함씨에게 제주해녀의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서귀포시 남원읍 해녀들의 미술 치료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 그리는 해녀’는 뉴욕·샌프란시스코영화제와 함께 북미 3대 영화제로 꼽히는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의 영광을 안았다.

‘자연이나 만끽하며 조용히 살자’는 마음으로 내려왔지만 사람들 속에서 영화를 찍다보니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마을을 위해 무언갈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 게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틀어주는 일이다.

처음 상영은 2013년 여름 구좌읍 평대초등학교에서였다.

스크린을 내걸고 빔프로젝터을 이용해 간이 영화관을 만들자 평대 주민 1200여 명 중 300여 명이 몰려 들었다.

함씨는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님이 한쪽 손에 돗자리를 끼고 오시는데 그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한 동네 삼촌은 신혼 때 이후 거의 30년만에 영화를 보신다고 해서 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주민인 함씨의 행동을 모두가 달가워해준 건 아니었다.

혹여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겠느냐는 삐딱한 시선들 속에서도 마을순회영화관은 꾸준히 이어졌다.

◇ 주민이 주체가 되는 마을미디어 ‘와들랑’
 

함씨는 마을 전체가 응원해줄 수 있는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사단법인’으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제주마을소도리문화연구소’다.

구좌읍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토박이부터 시작해 이주민들까지 자유롭게 연구소에 들도록 했다.

‘소도리’는 들은 이야기를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닌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다.

이웃에게조차 말을 건네지 않는 마을에서 주민 개개인의 삶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게 연구소의 목표다.

옛 하도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해 올해 7월 문을 연 연구소는 구좌읍의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와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즐길 수도 있고 한켠에는 40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연구소가 하는 주된 일은 구좌마을미디어 ‘와들랑’을 운영하는 것이다.

‘와들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마을신문뿐 아니라 팟빵를 이용한 라디오방송까지 제작하고 있다.

함씨 부부는 조력자 역할을 할 뿐 미디어를 이끄는 주체는 마을주민들이다.

마을주민이 기자가 되어 마을의 소식을 전달하고, DJ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구좌 토박이들의 ‘몽생이 수다’, 이주해온 성악가의 ‘구좌문화방송’, 세화고 여고생 5명의 ‘꽃고딩카페’, 구좌읍에 이주해온 기혼여성들의 제주표류기를 담은 ‘구좌줌마’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함씨의 아내 최씨는 “사람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부부가 잘할 수있는 게 미디어이다보니 이걸로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고 싶었다”고 와들랑의 취지를 설명했다.

제주도의 지역균형발전사업으로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게 된 와들랑.

함씨는 이를 통해 제주도가 지향하는 ‘문화 예술의 섬’으로 한발짝 더 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는 “문화를 만드는 일은 어떤 전문가가 오더라도 지속성에 한계가 있다. 결국엔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어 작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순환 과정을 갖춰야 한다”면서 “주민 스스로 느끼고 동참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와들랑의 콘텐츠를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제주 특유의 마을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한 함씨는 “미디어 참여를 통해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 공동체들이 모이면 마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민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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