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23. 이형문 제주스타트업협회 사무국장
“경청 통한 비전 설정 중요…대안 제시하는 조력자 꿈”

[편집자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문제도 지역에 있고 해결책도 지역에 있다. 건축가는 귀만 열어두면 된다.”

제주스타트업협회(이하 JSA)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형문씨(41)는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한 고(故) 정기용 건축가의 말을 인용하며 제주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광경영학 박사인 이씨는 강원도 등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하다 2015년 가을 제주동문시장 글로벌명품시장육성사업단 부단장을 맡으며 제주에 이주해왔다.

서울에서 문화컨설팅 전문기업 ‘기분좋은QX’에서 일하며 경남 삼천포 용궁수산시장, 전남 구례시장, 강원도 정선시장 등의 활성화를 위해 애썼던 그가 제주에 오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2015년 봄 올레길 한 바퀴를 다 돌 때까지만 해도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겠거니 생각했지만, 2년이 훌쩍 지난 현재 그는 제주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준비를 하고 있다.

◇ 지역민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다
 

이직을 결심하며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던 중 제주 동문시장을 글로벌명품시장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힐링을 목적으로 한 제주 이주 열풍이 한창이던 때였지만 이씨에겐 관심 밖이었다. 문화컨설팅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

덜컥 합격 통보가 날라들었고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안은 채 별다른 고민 없이 제주행을 택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제주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시장 일은 전국 어딜 가나 힘들지만 제주만큼 배타성이 강한 곳은 없었다”는 이씨. 일을 시작하기 앞서 시장 상인들과 섞이는 게 먼저였다.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먼저 다가가 꾸준히 말을 건 덕분에 상인들이 하나둘씩 마음을 열어줬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사업 추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역 상인들의 욕구를 읽은 다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대부분 방향을 정해놓고 따라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때 떠오른 말이 고 정기용 건축가의 말이다. 문제도 해결책도 모두 지역에 있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따른 이씨는 기획자로서 귀를 열고 상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의 목적은 ICT(정보통신기술) 접목과 크루즈 관광객 유치이지만 무작정 이상을 쫓아갈 게 아니라 상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유명 가수를 불러 한류 축제를 여는 대신 사업비의 50%가량을 시설 환경 개선에 투입했다.

동문시장에서 길을 헤매는 이들을 위해 게이트마다 번호를 달았고 장을 보며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벤치 등 쉼터공간도 확대했다.

이씨는 “단순 일회성 행사에 엄청난 돈을 쓰더라도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건 그다지 크지 않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며 “공사를 할 땐 불편해했지만 공간이 편안해지니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는 도민과 관광객들의 만족도도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크루즈 단체 관광객 100명을 시장에 데려온 적 있는데 상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보여주기식일 뿐”이라며 “ICT도 좋다고 해서 다 끌어올 게 아니라 시장에서 진짜로 필요한 핀테크나 위치기반 서비스 등을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제주 문제 대안 제시할 JSA”…조력자가 되다
 

시장 컨설팅에 주력했던 이씨가 도내 스타트업(Start-up, 신생 벤처기업)들이 한데 모인 JSA에 눈길을 돌리게 된 건 이 조직을 통해 제주의 미래를 컨설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지난 8월부로 일을 그만두게 된 이씨는 고향인 강원도의 한 사업단에서 일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커져버린 제주에 대한 애정과 마음을 나눈 사람들 때문에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창립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JSA에서 사무국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들에 이끌려 사무국장직을 맡게 됐다.

JSA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기득권이나 형식적인 규제에 가로막히면서 정글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스타트업들이 생태계 구축을 위해 출범시킨 조직이다.

창립 취지에 공감하며 알게 모르게 JSA 출범을 위한 준비를 함께 해왔던 이씨는 “지금까지는 외롭게 싸워왔던 이들이 소통을 하는데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제주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안을 제시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면서 “조력자이자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여행·레저·체험, 문화·예술·콘텐츠, 교육·컨설팅·마케팅, 공간, 외식, 생산·유통, ICT(정보통신기술), 디지털노마드 등 총 8개 분과에 대해 설명하며 “각각의 분과별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함께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제주에 없던 것을 만들되 제주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결국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는 이씨.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며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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