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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서귀포다움’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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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다움이란 무엇인가.”

요즘 서귀포의 생각하는 주민들 사이에 제기되는 논의(論議)다. 근년에 불어닥친 제주 부동산 붐이 한라산 남쪽 서귀포로 확산되면서 자연이 훼손되고 공동체 공감대가 쇠퇴하자 주민들은 얻는 것보다 못지않은 상실감을 느끼는 것 같다. 또한 이국적이고 역동적인 풍광이 좋아서 서귀포를 즐겨 찾는 국내 여행객들도 난개발로 변해가는 서귀포의 모습을 보고는 “서귀포답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논의의 초점을 수렴하면, 서귀포의 변화가 마음속에 그리는 이상적(理想的)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인 듯하다.

11월 하순 서귀포문화원이 주최하는 문화포럼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포럼 주제가 바로 ‘서귀포다움이란 무엇인가’였다. 고향이고 반세기 동안 지역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기에 나름의 서귀포다움에 대한 생각을 하며 포럼에 참석했다.

이상순 서귀포 시장이 포럼 개막 인사말 첫 마디가 내 귓전을 세게 때렸다. “서귀포시는 한 달에 인구가 1000명씩 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왜 서귀포에서 서귀포다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듯했다. 인구증가는 도시 변화의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홈페이지를 보면, 9월말 인구가 18만4278 명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서귀포 인구는 15년간 15만 명을 맴돌았다. 최근 3년간 약 2만5000명이 늘었고, 최근 증가에 가속도가 붙었다. 앞으로 이 추세로 인구가 늘면 10년 안에 30만 명이 넘을 것이다.

최근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기가 많이 태어나서가 아니다. 이주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30년이면 육지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과반을 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구가 증가하면 주택이 늘어나야 하고 길도 많아져야 하고 주민들의 생활방식도 급격히 변할 것이다.

포럼이 열린 서귀포혁신도시를 바라보며 옛 생각을 떠올랐다. 50년 전 이곳은 여름이면 태풍이 덮치는 길목으로 곡식을 재배할 수 없어 고구마나 심었고, 겨울엔 한라산을 휘돌아 나오는 북서풍으로 동네를 이루어 살 수 없었다. 1960년대 후반 정계 실력자 JP(김종필)가 이곳에 대규모 밀감 과수원을 조성하여 밀감 재배를 제주도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던 곳이다.

그 귤밭 일대에 월드컵경기장이 생겼고 이제 상전벽해의 혁신도시가 건설되어 국세공무원교육원과 국립기상과학원 등이 입주했다. 멀지 않은 해안가엔 강정해군기지가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근처 이마트에서 쇼핑한다. 주민들은 서울과 같은 도시적 소비생활을 한다. 아마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호적을 추적하면 서귀포 토박이는 아주 소수일 것이다.

서귀포가 서귀포답지 않다는 주민이나 관광객의 불만 대상은 아마도 해안가의 난개발과 새로 생기는 주택가의 고층아파트일 것 같다.

내가 만난 주민의 불평이 무척 상징적이었다. “작년에는 보였던 한라산이 올해 보이지 않고, 지난달 보였던 서귀포 앞 섬들이 이 달에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경기장이 생긴 2002년만 해도 서귀포시는 이곳을 신시가지로 개발하며 아파트는 3층 이하로 고도제한을 해서 도시가 아담하고 잔잔했다. 2007년 사업을 시작한 혁신도시가 최근 본격화하면서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며 한라산과 바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서귀포 스카이라인이 보기 흉하게 훼손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서귀포 시내는 주차공간이 없어 시내곳곳이 자동차 야적장처럼 변하고 쓰레기와 하수처리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거리청소를 하던 공동체 의식도 도시팽창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서귀포의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정서는 이율배반적이다. 조망권이 침해되고 주차하기 힘들고 쓰레기 등 생활의 불편은 싫어하면서도 부동산가격의 상승에 따른 재산권 행사 욕구는 더 적극적이 된다는 것이다. 땅을 가진 주민들은 빌딩의 고도제한을 풀고 싶어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 행태는 어디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며 주민만을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중앙정부의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가 20층짜리 아파트를 올리고 그 가격이 치솟는 것을 본 주민들이 동등하게 허가해 달라는 건 정상적인 요구다. 문제는 규제완화에 대한 고민 없이 야금야금 풀어주는 행정 당국자들이다.

서귀포시는 동쪽의 성산일출봉에서 서쪽의 송악산까지 직선거리 70㎞에 이르며 면적이 서울보다 넓은 지역이다. 본토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그냥 제주섬 하나로 보지만, 현지에서는 한라산 남쪽 서귀포시를 산남(山南)으로 부르며 시골취급을 하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실제 자연경관이 역동적이고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런 특징이 서울 등 대도시 관광객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일 듯싶다.

인구 18만 명의 이런 도시에 한 달 1000명씩 인구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변화의 진폭을 짐작케 한다. 영어타운 도시, 신화역사공원, 중문관광단지, 강정해군기지, 헬스케어타운, 제2공항 등 국책프로젝트가 서귀포시에 몰려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국책사업보다 더 큰 변화의 원인은 중국 붐인 것 같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공항에서 가까운 제주시 부동산값이 뛸 대로 뛴 상태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헐한 서귀포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서귀포 주민들은 여기서 서귀포다움이 상실되고 있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시는 변화가 그 속성이다. 산업이 달라지고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 도시의 모습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서귀포답다’라는 말은 옛날 모습을 그대로 지키며 살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도시는 자연환경 위에 세워지는 것이므로 자연과 도시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이에 맞게 형성된 주민의 생활이 쾌적하게 되는 것이 ‘답다’라는 뜻에 부합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서귀포는 투기자본, 개발업자, 현지 건설업자의 욕구가 어우러져 난개발이 확산되는 것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서귀포다운 서귀포를 만들겠다는 고민과 철학을 갖고 규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티모시 이건이 쓴 글이 참 시사적이다.

이건은 시애틀 출신으로 그곳에 살며 작가 활동을 한다. 시애틀은 요즘 미국 최대의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 본사가 있는 도시다. 아마존이 너무 급성장하면서 시애틀도 급변했다. 연봉 10만 달러 이상 받는 봉급자 4만 명이 고용되고 이에 따라 부수적으로 5만 명의 일자리가 늘다보니 시애틀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

이건은 이렇게 썼다. “발전되면 좋은 것도 있지만 나는 옛날 시애틀이 그립다. 주택 평균값이 지난 5년 동안 2배나 올라서 70만 달러로 상승했다. 학교 선생이나 경찰관이 호숫가에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시애틀에서 이런 현상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귀포는 이런 고소득 일자리 창출도 없이 부동산 거품 위에 팽창하고 있다. 서귀포 주민들도, 관광객들도 바다와 한라산이 동시에 시원히 보이는 동네를 잃어가고 있다.

개발 욕구를 절제하고 방향을 잘 잡지 못한다면, 그리고 부동산 거품이 걷히지 않는다면 서귀포시는 아름다운 곡선의 스카이라인을 잃어버릴 것이며, 향기로운 숲 냄새와 새소리 대신 쓰레기 썩는 냄새와 자동차 기계음이 온 동네를 채울 것이고, 바닥에 자갈돌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바다는 오폐수로 더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화제에 올리는 것은 부동산 가격일 것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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