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더 주시면 안 돼요?" "가족 중에 환자가 있어요."

12일 0시20분 제주국제공항 3층 대합실 3번 게이트 앞.

모포와 매트리스, 깔개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50m 이상의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4~5시간의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던 데다 남들 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잠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보급품을 받은 체류객은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난방이 되는 2번·3번 게이트 앞이 특히 붐볐다. 화장실 앞에서도, 짐들이 오가는 복도에서도 체류객들은 머리 뉠 곳을 찾아 헤맸다.

폭설에 따른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본의 아니게 공항에서 쪽잠을 청하게 된 승객은 한국공항공사 추산으로 모두 3000여 명.

그러나 공사와 제주도 등이 마련한 보급품(모포·매트리스·깔개)은 종류별로 각각 2700개에 불과했다. 항공기에 탑승한 채 행여나 이륙하기를 고대했던 승객 1000여 명이 결국 비행기가 뜨지 못하자 대합실로 무더기 돌아온 탓이 컸다. 그렇게 보급품은 1시간여 만에 동이 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체류객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분통을 터뜨렸던 이들은 자정을 코앞에 두고 결항 소식을 통보받은 아시아나 항공기 승객들이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활주로 2차 폐쇄가 이뤄졌다 재개된 오후 7시30분부터 잔여 18편 중 14편에 대한 운항 중단을 결정한 반면, 아시아나는 활주로 3차 폐쇄가 이뤄진 오후 11시를 넘긴 뒤에야 잔여 12편에 대한 운항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강민경씨(63·서울)는 "자정에 결항 통보를 받은 것도 황당한데, 기다리라고 할 뿐 현재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답변을 들어 더 황당할 뿐"이라며 "내일 중요한 계약이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 모포를 잡고 잠이 오겠느냐"고 성토했다.

이선영씨(44·경기)는 "안내받은 숙박의 3분의 2 정도가 5성급 호텔이었다. 찜질방 인근으로 가는 셔틀버스는 1시간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더라"며 "사실상 대책이랄 게 없다. 일찍이 결항시켰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항공사 측의 무책임함에 손사래를 쳤다.

오후 10~11시쯤 결항 통보를 받은 타 항공사 승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강모씨(44·강원)는 "예정대로라면 오후 9시에 이륙했어야 했는데 지연, 또 지연되다 결국 11시30분쯤 결항돼 이렇게 공항에서 쪽잠을 자게 됐다"며 "천재지변 때문이긴 하지만 결항 소식을 조금만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상명씨(54·제주)는 "날씨가 이렇게 돼 버린 걸 누구를 탓하겠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일부 체류객은 보급품을 쟁여두고 있더라. 그게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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