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손을 놓으라는 뜻인지…하늘이 두렵기만 합니다."

닷새 만에 폭설이 그친 7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한 무밭.

올해 14년차 베테랑 농사꾼인 최동구(62)·김현애씨(50) 부부는 이파리조차 보이지 않는 새하얀 무밭을 보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예년 같으면 출하기를 맞아 한창 수확에 바빴을 부부지만, 이날 함께 장화를 고쳐 신던 부부는 "올겨울은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하늘을 쳐다봤다.

20㎝ 정도 눈이 수북이 쌓인 밭을 헤집고 들어가 파헤쳐 보니 곧 맥없이 축 처진 어린 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로 잘라 보니 윗부분은 이미 물러 있었고, 세로로 자른 단면은 곳곳에 바람이 들어 푸석푸석했다. 긴 시간 동안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해안가에서 해발 100m 지점까지 모두 75만㎡(22만여 평)의 부지에서 무를 키우고 있지만, 폭설과 한파로 현재 80% 가까이 수확하지 못했다. 눈이 많이 쌓인 해발 80~100m에 있는 무밭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최씨는 "지난해 가을엔 가뭄, 12월엔 산지폐기, 올해엔 벌써 폭설만 두 번째다. 이젠 정말 손을 뗄 때가 온 것 같다"며 "무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데, 우리 밭에선 건질 무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제주는 겨울철 전국 무 공급물량의 95%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월동무 주산지다. 2017년 말 기준 현재 재배면적은 4874ha, 생산량(잠정)은 34만6000여 개에 이른다.

제주에서도 월동무가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곳은 바로 최·김 부부가 있는 서귀포시 성산읍이다. 전체 생산량의 45%(재배면적 2205ha·생산량 15만6000개)가 이곳에서 나고 있다.

문제는 겨울철 북서풍과 제주 지형에 따른 영향으로 1월 중순부터 성산읍이 있는 제주 동부지역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면서 월동무 대부분이 어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사단법인 한국농업경영인 제주도연합회에 따르면 실제 제주도 등에 접수된 농작물 피해면적(1461ha)의 95%(1394ha)가 월동무 재배지로, 대부분 성산읍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전체 재배면적의 30%만 출하된 점을 감안하면 피해는 더 늘어난다.

피해는 농가뿐 아니라 전국의 소비자들도 입는다. 가격 상승 폭이 커서다.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가락동 도매시장 기준 현재 월동무(상품) 도매가격은 18㎏당 2만6913원으로, 불과 열흘 만에 2.6배(1월27일·1만278원)로 오른 상태다.

소비자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월동무를 대량 구매하는 김치·급식 업체들이다.

급식 제품을 공급하는 CJ프레시웨이 조원일 농산팀 과장은 "12년째 구매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눈이 걷히고 피해 상황을 봐야겠지만 월동무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상 관계자는 "3개월 정도 비축물량이 있어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제주도 날씨가 3월까지 안 좋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3월 날씨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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