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10주년…사저 특별공개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 국정을 이끌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날이다. 이날로부터 정확히 10년 지난 2018년 2월25일. 짧았던 그의 고향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일반에 공개됐다.

이번 사저 공개는 그의 귀향 10주년을 기념한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특별공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앞서 인터넷으로 진행된 사저 방문 신청은 하루 만에 모두 마감됐지만, 24·25일 주말을 맞아 현장에서 관람 티켓을 발급, 대통령의 흔적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저로 가기 위해서 우선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관람티켓을 제시하고 철문 앞에서 잠시 대기, 이내 사저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문에서 정문까지는 50m 정도로 길 왼쪽에는 울창한 대나무숲이, 오른쪽에는 개나리와 산수유나무가 있는 화단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사저 정문에는 '선비 나무'로 불린다는 '회화나무'가 시민들을 반겼다. 회화나무 아래서 유의사항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 관람이 시작됐다.

사저 관람은 봉하마을에서 3년째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강오선 해설사(49)와 함께했다.

◇ 자연과 함께하는 '지붕낮은 집'…대통령 흔적 고스란히
먼저 발걸음이 멈춰 선 곳은 사저 입구쪽 정원에 자리한 제주산 토종 산딸나무 앞이었다. 사저에 있는 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는 나무로 제주도의 4·3희생자 유족회가 직접 심은 나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한 첫해 제주도민과의 간담회에서 '과거 국가권력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국정 책임자가 밝힌 최초의 제주 민중항쟁에 대한 공식적 사과로 당시 인연이 산딸나무로 이어졌다.

정원을 지나 낮은 언덕을 1분 정도 걸었을까. 이내 황톳빛의 낮고 평평한 지붕을 가진 사저가 보였다.

사저의 이름은 '지붕낮은 집'이다.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자연과 조화로운 집을 원했던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을 반영해 지었다.

사저는 지하 1층, 지상 1층, 건축면적 600여㎡ 규모로 안채, 사랑채, 주방, 서재가 각각 분리돼 있다.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자연과 자주 접하라는 건축가의 의도와 언젠가 이 집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이 더해져 만들어진 구조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이 서 있는 '사저'에서 '아방궁' 같은 화려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붕낮은 집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사랑채를 방문했다. 남향의 사랑채는 노 전 대통령이 손님을 모시거나 보좌진과 식사하던 공간이다.

사랑채 천장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낮은 곳에서 시작해 높은 곳으로 눈길을 옮기면 그 끝 벽면에 직사각형의 커다란 창문 4개가 나란히 서 있다. 창 밖으로는 사자바위와 봉하산이 보여, 한 폭의 병풍과 같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봉하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노 전 대통령이 그 창문을 바라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벽면 한쪽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인 신영복 선생이 쓴 '사람사는 세상'이란 글귀가, 그 아래에는 노 전 대통령 손녀가 그린 낙서가 시선을 끌었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는 노 전 대통령 철학의 힘이, 아래의 낙서에선 손녀를 향한 사랑이 동시에 느껴져 묘한 조화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이 개인 생활을 하고, 다양한 집필 활동을 했다는 안채도 들여다봤다. 안채는 내부 입장이 되지 않아 커다란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안채에는 TV, 컴퓨터 등이 자리하고 있어 개인 생활을 위한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안채 한 곳에 자리한 컴퓨터에서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민주주의 2.0'에 올렸던 많은 글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글(유서)이 컴퓨터 바탕화면에 한글파일로 여전히 저장돼 있다는 설명이 이어지자 많은 이들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안채 한쪽 벽에는 신영복 선생이 쓴 '愚公移山'(우공이산) 액자가 자리했다. 끈기 있고 자신 있게 국정을 이끌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이 담긴 글이라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인터넷 필명이 '노공이산'이었으니, 컴퓨터 앞에서 고심하던 그가 액자를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도 해봤다.

뒤뜰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계단식 화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봄에는 목단, 목련 등 봄꽃들이 피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화단을 지나 몇 발자국 옮기면 노 전 대통령이 공식적 업무를 보던 서재에 도착한다. 서재 역시 내부 입장을 되지 않아 큰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서재는 우리가 아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벽 한쪽에는 다독(多讀)으로 유명한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읽었던 919권의 책이 빼곡히 차 있었다. 책은 사상, 철학, 소설 등을 가리지 않고 다채로웠다. 919권의 책은 노무현 사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서재 구석에 자리한 옷걸이에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생활을 상징하는 '밀짚모자'가 걸려있다. 노 전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쓰고 시민들과 소통했고, 마을을 누볐다.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마을환경 개선 운동,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에 대한 논의하던 노 전 대통령은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직접 밀짚모자를 쓰고 문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중정(中庭)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각형의 모양으로 각 변이 사랑채, 안채, 서재, 경호동과 접하고 있다. 천장은 뚫려 있어 사각형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경호동은 국가 소유로 비서관, 경호원 등이 사용하는 사무공간이다. 애초 경호동을 따로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보좌진들과의 소통을 위해 서재 내부에 마련하길 원했다고 한다.

집이 크게 보여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소통'을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해 만들어졌다.

◇ 고시공부 했던 '뱀산' 마주해…5월부터 일반에 공개
사저를 둘러보고 다시 정원으로 나오는 길, 사저 맞은편에는 길게 늘어져 있는 뱀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뱀산'이 보였다.

뱀산에는 삼각형 모양의 경작지가 있는데 대통령 부모님이 직접 경작한 감나무밭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노 전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한 토담집 마옥당(磨玉堂)이 있었다.

마옥당은 구슬을 닦듯 학문을 정진하라는 의미로 노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는 설명도 더해졌다.

사저 관람에 걸린 시간을 약 30분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노 전 대통령의 흔적을 찾고, 그 흔적으로 그를 되새기는 데 짧은 시간이었다. 다시 정문으로 나와 뒤를 돌아보니, 자연과 하나 된 사저가 좀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이날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섰던 모녀(母女) 사이인 박정해(49), 이채린씨(23). 둘은 "평소 봉하마을을 자주 방문하지만, 사저를 본 적은 없다"며 "대통령이 거주하셨던 공간을 직접 보고, 그의 삶을 한 번 더 이해하고 싶어서 방문했다"고 이른 아침부터 봉하마을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도 동탄에서 가족들과 함께 온 신동수씨(46)는 "노 전 대통령은 본인보다 국민을 위해 일하신 대통령"이라며 "그가 많이 생각나 봉하마을에 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노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봉하마을을 꼭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처음"이라며 "최근 아이들과 노 전 대통령의 삶을 되돌아보는 영화를 많이 봤다. 아이들과 그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들 신희찬군(14)은 "부모님과 영화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배웠다"며 "오늘 직접 마주하니 그의 삶을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사저를 안내한 강오선 해설사는 "사저는 전직 대통령의 집을 넘어 봉하들녘에 친환경 생태 농업을 도입하고, 봉하산을 단장하고, 화포천을 복원하던 농부 노무현의 집,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모색하던 시민 노무현의 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이 집을 시민들께 기증하시려고 했다"며 "보다 많은 분이 이곳에서 그의 삶과 철학, 가치관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기도 학예연구사는 "미래세대에 노무현 정신과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사저를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라며 "대통령을 향한 복잡한 마음이 들더라도, 하나하나 아끼면서 관람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노무현재단은 오는 5월1일부터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상시 개방할 계획이다. 재단은 주중 하루만 쉬고 매일 5∼6회 정도 대통령의 집을 일반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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