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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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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 모습과 뚱뚱한 체형(體形)은 할아버지를 닮았다. 뒷짐 지고 웃는 모습 등 제스처까지도. 북한 권력의 원천인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닮아 보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고, 권력 주변에서 이미지 조작을 위해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본래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북한 권력의 행태를 보았던 남한 사람들은 조부와 비슷한 지금 김정은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까. 아마 도발적인 카리스마와 냉혹한 과단성을 떠올릴 것이다.

지난 5일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났을 때 보인 김정은의 접대 스타일은 파격적이다. 문 대통령의 친서를 그 자리에서 읽어보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대화에 대해 시원스럽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국내 언론의 상투적 표현 “통근 스타일”이라는 추임새가 무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정은이 한국 특사단과 만난 시간은 4시간이 넘었고, 그중 만찬 시간이 3시간이라고 한다. 식사 자리엔 김정은의 부인(이설주)과 여동생(김여정)이 함께 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동안 북한 대표단에게 베풀었던 호의에 대한 답례의 뜻이 있었을 테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품격을 갖춘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소위 ‘매력공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대담했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특사단의 방북 결과 보고에서 나온 김정은에 대한 인상이다.

그것뿐일까. 정의용 실장 등 한국 대표단은 핵과 미사일 버튼을 쥐고 세계를 긴장시키고 한국인을 공포에 질리게 해온 35세의 젊은 절대 권력자와 3시간 이상 식사를 같이 했다.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황상으로 볼 때 김정은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적나라하게 나왔을 법도 하다. 특사단은 김정은의 어떤 마음을 읽었을까.

김정은이 대통령 특사단에게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미국에게 협상의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쉽게 풀이하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협상 뜻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주도록 한 것이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대미협상의 공을 미국으로 넘기는 것을 보며 문득 1994년의 제1차 북핵 위기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탈퇴를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단을 영변 원자로에서 내쫓고 ‘서울 불바다’ 위협을 언급하며 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도려내기 공습’(surgical strike) 계획을 세웠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감지한 김일성은 그해 6월 카터 전 미국대통령과 CNN취재팀을 북한으로 초청하여 회담하고 미국의 영변핵시설 공습계획을 극적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회담이 있고 한 달 후 김일성은 사망했지만 그 해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를 목적으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 카터의 방북 요청을 거절하다가 이를 허락했다. 북한으로서는 김일성의 노련한 외교 감각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막아냈고, 한국과 미국에서 볼 때는 제네바 합의 도출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끊어내지 못했다. 북한은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눈을 속여 가며 우라늄을 농축했고,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후 4반세기 동안 미국의 클린턴 정부 8년, 부시 정부 8년, 오바마 정부 8년 등 무려 24년 동안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하며 위기를 모면했고, 이제 수십 기의 핵무기와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등 소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이르렀다.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무기 위협을 느낄 정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한 것은 김정은 집권 5년 동안이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사망하고 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4년 손자 김정은은 11세의 앳된 소년이었다. 국가, 권력, 핵전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였다.

그의 소년기는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하지만 서방 정보기관에서 흘러나온 정보나 언론의 추적 보도에 의하면 그는 1994년을 전후하여 여러 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럼을 잘 타는 평범한 소년이었고, 농구와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김정은이 얼마나 농구를 좋아하는지는 미국NBA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에 초청하여 환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정은이 개인적으로 교류한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미국인이 로드먼인 셈이다. 그가 소년시절 스위스에서 학교생활을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그는 서양의 팝 문화를 비롯하여 서양의 물질문화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제 김정은이 세계무대에 전면으로 등단했다. 그것도 자기 발로.

4월 말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곧 이어 트럼프 미국대통령과도 만나게 될 모양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담하게 그가 직접 두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점이다. 여동생 김여정을 통해 친서를 보내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후보 시절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고 싶다”고 호언했던 트럼프 대통령 답게, 그는 김정은의 회담 제의를 전격 수락하고 5월이라는 시한까지 못 박았다.

25년간을 끌어온 사태의 정황으로 볼 때 북핵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된다고 낙관하는 건 금물이다. 희망은 갖되 실패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이 만날 때 발휘될 즉흥적 파괴력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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