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이런 공연을 보게 된 게 어언 10년 만이에요”

26일 밤 국토 최남단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에서 펼쳐진 별빛콘서트에 한 주민은 소녀처럼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눈물을 보였다.

우두커니 솟은 하얀 등대에서 나오는 불빛이 밤 바다를 비추고, 기타선율과 어우러진 ‘제주도 푸른 밤’ 노랫소리가 마라도를 휘감았다.

제주관광공사는 마라도의 관광콘텐츠 발굴을 위해 이날 서귀포시 SNS 서포터즈 11명과 일반인 참가자 3명과 함께하는 체류형 관광이벤트 ‘마라도,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개최했다.

여객선 운항시간에 쫓겨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찬찬히 섬을 둘러보며 마라도의 가치와 매력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인데도 ‘방송 CF로 인해 마라도 하면 짜장면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유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2시쯤 제주도 남쪽 끝 송악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가량 가니 마라도 자라덕 선착장에 닿았다.

‘마라도,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작은 마라도 곳곳에서 보물을 찾아 사진으로 담아오는 것이었다.
 

 

서귀포시 SNS 서포터즈 단장을 맡고 있는 신승훈씨(41)는 해안선을 따라가다 가파른 기암절벽을 보고는 마치 설문대할망(신화 속 제주섬을 창조한 여신)의 얼굴과 닮았다면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포터즈 단원 김철홍씨(47)는 스쳐지나갈 수도 있던 절벽 위에 핀 백년초를 카메라에 담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초록의 모습이 마치 마라도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전복 모양의 지붕을 얹은 성당 건축물을 담고, 또 다른 단원은 하얀 등대와 돌담에 박혀있는 하얀 소라를 한 프레임에 담기도 했다.

 

 

 

 

 

 

보물을 찾는 길 위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들도 눈에 띄었다.

무너진 안내판, 잔뜩 쌓여있는 폐자재, 나뒹구는 고장난 카트, 누워버린 풍력발전기 등은 마라도가 얼마나 행정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등대 앞 ‘생명의 빛’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형물 앞 안내문은 글자가 대부분 지워져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대한민국 최남단임을 알리는 기념비조차도 일부가 깨지고 부식돼 있었다.

길 곳곳은 미관 따윈 아예 신경쓰지 않은 듯 시멘트가 덕지덕지 칠해져있어 이질감이 들 정도였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니까 길을 정비해야 하는데 제주 돌로 깔면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시멘트로 바른 것”이라면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저마다의 보물을 찾아 모인 자리에는 지역주민들도 함께했다.

마라도 특산물인 톳으로 만든 로컬푸드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사진을 본 주민들은 본인들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들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자신의 휴대폰에 옮겨가기도 했다.

“어머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라며 연신 고개을 끄덕이던 주민들은 마라도에서 자라는 식물을 비롯해 먹거리, 전설 등에 대해 얘기하며 마을에 어떤 스토리를 입힐지에 대한 고민에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배가 끊기는 오후 4시부터 고요함이 찾아들지만, 이날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까지도 사람들 소리가 넘쳐났다.

 

 

 

 

일몰을 바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이벤트의 하이라이트인 ‘별빛체험’이 시작됐다.

들판에 요가매트를 깔고 누운 서포터즈들은 어둠 속에서 서귀포천문과학문화관 별빛체험 전문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별을 바라봤다.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행성인 ‘금성(샛별)’부터 시작해 가장 빛나는 별로 알려진 ‘시리우스’, ‘오리온자리’, ‘쌍둥이자리’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천체망원경으로 달 표면을 관측하기도 했다.

별빛체험을 진행한 이승주씨는 “마라도는 높은 지형이나 건물이 없어 천체 관측에 적합한 장소”라면서 “한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보기 힘든 노인성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가치를 설명했다.

별빛체험 이벤트 열린단 소식에 개별적으로 찾아온 관광객도 있었다.

지인 2명과 함께 마라도를 찾은 김인자씨(67·서울)는 “서울에서는 별 볼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일부러 날짜를 맞춰서 왔다”며 “마라도에서 보낸 하룻밤을 영원히 기억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주출신의 혼성 어쿠스틱 듀오 ‘더 로그’의 별빛콘서트는 마라도의 밤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김은영 마라도 이장(48·여)은 “마라도에서 이런 공연이 열린 건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문화적 콘텐츠로 관광을 풀어가는 방식을 반겼다.

김 이장은 이어 “무엇보다 마라도가 오래 머물다 가는 섬이 되기 위해서는 환경 정비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행정에서는 인구 수에 맞춰서만 생각을 하지 연간 60만명의 관광객이 들어온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장에 따르면 현재 마라도 공용화장실 환경정비요원은 단 2명뿐이며, 민간위탁 환경정비사업을 하는데에는 연간 2000만원이 투입되는 게 전부다.

섬 특성상 폐자재 등 처리에 부담이 큰데도 개인의 역할로만 치부할 뿐 제대로 된 규정을 마련해주지 않아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주민들의 토로다.

관광객들은 배편 요금에 해상도립공원 입장료를 포함해서 내고 있지만, 서귀포시에서는 여객선을 이용하는 두 선사에만 수수료 명목으로 일부를 건넬 뿐 마라도에는 투입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주민들은 최근 마을협동조합을 꾸려 수익을 공동 배분하고 마을을 함께 가꿔나가자는데 뜻을 모았다. 아울러 관광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데도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신현철 제주관광공사 지역관광처 팀장은 “마라도에 매력적인 관광콘텐츠를 만들고 싶어도 공공은 일정 궤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뿐 결국은 마을이 주체가 돼야 하는데 그동안에는 전담 추진 주체가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다”며 주민 주도로 조직이 꾸려진 것에 반색을 표했다.

이튿날 서포터즈들은 체류형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숙소에서부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누며 각자 느낀 마라도를 SNS나 블로그 등에 기록하기로 했다.

신 단장은 “1억, 10억을 들인 축제보다 훨씬 더 제주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던 축제 아닌 축제였다. 최남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며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면서 “서귀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포터즈단도 관광콘텐츠를 만드는데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서귀포시와 협력해 안내판 교체 작업에 나서고,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등의 자문을 통해 스토리를 입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