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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上]현대사 비극, 과거사 극복 모범으로
  •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승인 2018.03.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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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제주4‧3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현재까지 추정된 희생자가 1만4000여 명, 유족 5만9000여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 비극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오명 때문에 피해 사실 조차 숨겨야했다. 뉴스1 제주본부는 아픈 과거를 딛고 화해와 인권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4‧3의 역사와 달라지는 인식 등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한 1948년 5월 중산간 지대로 피신한 도민들 사진.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주로 보인다(제주4·3평화재단 제공)© News1

제주4·3은 우리나라 건국 이후 7년 여에 걸쳐 이어진 한국 현대사에서는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비극이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됐던 4·3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5000~3만여명이 인명피해를 당했다.

가옥 4만여 채가 사라지고 중산간 마을 상당수가 폐허로 변했다. 학교와 면사무소 등 공공기관 건물이 불에 타고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됐다.

제주4·3사건이 도민에게 안겨준 고통은 인명과 물적 피해만이 아니다.

희생자 유족들은 수십년간 '빨갱이'라는 비난 속에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1950년 8월에 보도연맹원 2만7000명과 5만여명의 사건 관련 가족들을 사찰당국이 관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평화재단은 "군경 토벌대에 가족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 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유족들은 감시당하고 사회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았다"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2000년 8월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4·3 유족 7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86%가 연좌제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유족들은 공무원 임용시험 등 취직 또는 승진은 물론 국내외 여행과 출입국, 신원조회와 감시에 시달렸다.

연좌제 피해는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과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4·3진상규명의 시작

4·3진상규명이 처음 시도된 것은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한 이후다.

당시 제주대학생 7명이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를 조직한데 이어 제주 출신 국회의원과 도의회 등이 참여해 진상규명의 싹을 틔우는 듯했으나 다음해 5·16군사 쿠데타로 중단되고 만다.
 

1989년 4월 제주대학교에서 제주대 총학생회가 4·3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제주4·3평화재단 제공)© News1

오히려 4·3진상규명동지회 회원들이 구속돼 옥고를 치르는 등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서 4·3은 다시 금기시 됐다.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4·3을 소재로 한 '순이삼촌'을 발표, 4·3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함께 4·3논의가 또 다시 불붙었고 87년 4월3일에는 제주대 총학생회가 4·3발발 이후 처음으로 위령제를 열기도 했다.

1989년 시민사회단체 등이 주축이돼 제주시민회관에서 4·3추모제를 봉행한다. 4·3 이후 첫 공개 추모행사였다.

이후 4·3연구소와 언론, 문화예술인, 제주도의회 등 각계에서 4·3진상규명에 참여했고 1997년 4월 '제4·3 50주년 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된다.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사과

1997년 12월16일은 4·3진상규명 역사의 큰 분기점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다.
 

2003년 10월31일 제주시 라마다 호텔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4·3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제주4·3평화재단 제공) © News1

200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유족과 시민단체 대표 8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4·3특별법에 서명했다.

이 법 제1조는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해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4·3특별법에 따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가 출범해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과 확정, 희생자와 유족 신고접수 및 결정, 4·3평화공원 조성, 희생자 유족의 의료지원금 지원과 후유장애인 생활지원금 지급 등이 추진된다.

2003년 10월15일에는 정부의 4·3사건 진상보고서가 확정됐고 같은해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인정하고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2005년 1월27일에는 '4·3의 큰 아픔을 딛고 진실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 극복한 모범을 실현하고 있다'며 제주는 평화의섬으로 지정된다.

정부 진상보고서 확정, 대통령 사과에 이어 2014년 3월에는 국가적 해결과제 중 하나인 법정기념일로 지정된다.

평화재단은 "법정 기념일 지정을 계기로 4·3문제의 해법은 국민통합과 화합의 국정 과제를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2013년에는 4·3유족회와 퇴직 경찰 모임인 제주도재향경우회가 65년간의 앙금을 떨치고 4·3위령제와 현충일 추념식에 함께 참배해 화해와 상생이라는 4·3정신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7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4·3추념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돼 또 한번 역사적인 분기점으로 남게 됐다.

다만 정부가 지방자치법 위반, 국민적 불편·혼란 등을 이유로 반대하며 대법원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4·3수형인 재심, 국회에 계류 중인 희생자 배보상과 군사재판 무효화 등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도 남은 과제다.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k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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