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국내 최초로 동물 사체 부패 실험을 통해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인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았다.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팀은 동물 부패 실험 결과, 9년 전 제주보육교사 살인사건 피해자 이모씨(27·여)사망시간이 실종 시점으로 추정된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2009년 2월2일 오전 9시10분 보육교사 이씨가 2월1일 새벽부터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씨는 실종신고 6일째인 같은해 2월8일 오후 1시50분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실종 당일 사망했다는 여러 정황이 있었다. 2월3일에서 2월8일까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시신이 젖어 있었고 위장 속 소화되지 않는 음식물과 혈중알코올농도, 2월1일 오전 4시4분 이후 휴대전화 사용 내역이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런데 부검결과는 부패가 없고 시신의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다는 등의 이유로 사망시간이 사체 발견일에서 최대 24시간 이내로 나와 논란이 있었다.

결국 경찰은 정확한 범행 시간마저 추정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제주지방경찰청 김기헌 형사과장은 "당시에는 배수로라는 특수한 환경과 장비 부족 등으로 부검의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은 동물 사체의 부패 과정을 관찰한 뒤 시신의 부패 정도와 대조해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더 명확하게 추정하려는 목적이다.

이같은 실험은 국내에서는 첫 시도다. 2014년 유병언 시신 발견 당시 곤충 사체로 사망시간을 추정한 적은 있다.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인 가천대 이정빈 석좌교수의 주관으로 제주경찰은 물론 전북청 과학수사계, 경찰수사연구원 등 전국의 과학수사요원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에는 55~70kg 상당의 돼지 4마리와 10~12kg의 비글 3마리를 사용했다.

1월29일부터 3월2일까지 회차당 7~10일씩 총 4회에 걸쳐 24시간 부패 과정을 관찰했다. 동물에 옷을 입히고 소방용수를 뿌리는 등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기상 조건을 조성했다.

경찰은 실험결과와 다른 단서들을 종합해 피해자 사망시간이 부검의가 제시한 시신 발견 시점이 아닌 실종 시점인 2월1~2일 즈음으로 보고 있다.

동물 사체 실험에서 사후 7일 뒤에도 부패를 지연하는 냉장효과와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은 현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배수로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부패가 지연됐고 피해자가 두터운 옷(무스탕)을 입어 체온이 유지됐다는 것이다.

제주지방경찰청 김기헌 형사과장은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직장온도가 현장특성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법의학적 성과를 거뒀다"며 "범행시간은 수사의 기본인만큼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용의자들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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