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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미·중 패권, 무역전쟁에서 기술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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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컴퓨터를 본 적이 없다. 보았을지라도 그걸 슈퍼컴퓨터라고 누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비전문가에게 슈퍼컴퓨터 같은 고도의 시스템 제품은 그 겉모양을 보고 기술의 발전 정도를 알 길이 없다.

슈퍼컴퓨터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태풍이나 폭우가 발생해서 일기예보를 할 때다. 우리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각종 기상 자료를 이 슈퍼컴퓨터에 입력하여 날씨를 예측한다. 예보가 틀리는 날이면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대단히 높아졌다. 아마도 슈퍼컴퓨터 덕택일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일기예보 외에 양자역학, 기후변화예측, 석유탐사, 핵융합과 핵분열 제어, 우주과학, 의학, 생화학 분야 등 전 분야에서 고도의 계산과 모의실험에 두루 쓰인다. 제작비용이 비싼 슈퍼컴퓨터는 국가기관이나 연구소 및 대기업 등에서 사용한다. 어떤 의미에서 슈퍼컴퓨터의 제작 및 활용 능력은 바로 한 나라 기술력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다. 따라서 슈퍼컴퓨터의 양과 질에서 절대 왕좌는 미국이라는 통념이 사람들 마음속에 깔려있다.

그러나 이제 이 통념을 깨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26일 국제슈퍼컴퓨터학회(ISC)가 ‘Top500’ 순위를 발표했다. 이 학회는 매년 6월과 11월 두 차례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계산 속도와 전력 효율을 평가하여 500대의 슈퍼컴퓨터 명단을 성능 순서대로 발표한다.

올해 리스트에 오른 500대 슈퍼컴퓨터의 국가별 분포를 보면, 종주국인 미국이 중국에 의해 양적으로 압도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206대를, 미국이 124대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말에 비해 중국은 4대가 늘었고 미국은 21대가 줄었다. 일본이 36대, 영국이 22대, 독일이 21대, 프랑스가 18대로 중국과 미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1위는 미국 에너지부 오크리지 연구소에 설치된 IBM 제품 ‘서밋’이다. 지난 5년간 1위는 중국의 슈퍼컴퓨터였다가 올해 미국이 1위를 탈환했으니, 미국이 체면을 찾았다고나 해야 할까.

슈퍼컴퓨터를 비롯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은 10여 년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중국은 공업화 초기에 방대한 시장을 이용하여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 회사들에게 기술 이전을 강력히 요구했다. 중국은 선진국 기술을 베끼는 방식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고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됐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엄청난 달러 보유고를 갖게 된 중국은 경제성장의 동력을 노동과 자본에서 기술개발로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국가가 지배적인 경제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바로 기술에 달려있다는 걸 중국은 절감했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 투자회사의 수석전략가 루셔 샤르마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당 GDP 성장의 20%는 노동과 자본의 몫이지만 나머지 80%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 개발과 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외국 기술을 단순히 베껴 쓰다가 자체 기술개발에 나선 것이다. 여기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 막대한 무역흑자로 축적된 달러 보유고와 선진국 연구소와 산업계에 진출한 중국계 과학기술자들이다. 중국은 기술획득 목적으로 선진국 기술관련 산업에 투자하고 중국계 과학기술자를 스카우트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산업스파이를 이용해 첨단기술을 빼돌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은 구글 같은 기술기업들의 중국내 활동에 제한을 가하면서 미국의 기술을 빼가는 중국의 정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됐다. 특히 2015년 중국이 야심차게 선언한 ‘중국제조 (made in China) 2025’를 미국경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인터넷과 반도체, 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과 연결된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최근에 중국의 정보통신기업 ZTE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품공급 중단 소동이나, 국방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미국 정부가 인텔의 대 중국 수출 제약을 가한 것은 중국 기술발전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최근 악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은 무역질서를 헝클어뜨려 세계경제에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한편 두 강대국 간의 기술 전쟁으로 보는 관점도 강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500억 달러 보복관세 조치를 취했는데 미국내 이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트럼프의 지지도를 앞선다고 한다. 그 이유는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정책은 그의 지지기반인 미국 중서부의 옛날 공업 지대 유권자를 의식한 것이지만 그 효과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미국 기술산업 보호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 등 서방 선진국도 트럼프의 무역 정책에 불만이 크지만 중국의 폐쇄적인 시장 및 기술 정책에 일침을 가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중국압박에 동조하는 정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중국을 향해 무역흑자 감축을 요구하면 중국의 기술경쟁력은 약해질 것으로 본다. 기술은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이미 감소추세로 돌아선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더 줄어들게 되면 중국의 기술산업 투자 여지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거대한 기술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위상은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와 같다. 톱500에서 한국은 7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누리온’이 11위를 차지한 것은 위안을 준다.

고래싸움엔 새우가 존재할 틈새가 없다. 그러나 기술 경쟁을 벌이는 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은 기술발전의 좋은 자극을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 하기 나름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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