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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때 비행장 끌려간 작은 오빠…유해라도 찾았으면"
  •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승인 2018.07.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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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제주시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인근에서 열린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2018.7.10/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오미란 기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10일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동쪽 뫼동산 인근에서 봉행된 '제주국제공항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 참석한 양유길씨(82·여·제주시 이호동)는 제례 내내 하염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예산 문제로 중단됐던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이 9년 만에 재개되는 순간이었다.

양씨는 4·3 당시 큰 오빠 고(故) 양해길씨와 작은 오빠 고 양묘길씨를 잃었다.

두 오빠 모두 제주북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양씨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진학시키려고 제주에 왔다가 차례로 행방불명됐다.

이듬해 양씨가 접한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큰 오빠는 재판도 없이 마포형무소로 끌려갔다가 숨졌고, 작은 오빠는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으로 가는 트럭에 강제로 실려갔다가 총살당했다는 것.

이후 양씨는 제주에 환멸을 느낀 부모와 함께 서울로 향했고, 그렇게 수십년을 타향살이로 보냈다.

그러던 그가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온 건 2004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제주공항에서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이 이뤄진 바 있지만, 양씨가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에는 미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고 했다.
 

10일 제주시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인근에서 열린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2018.7.10/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양씨는 비록 9년 만이지만 제주공항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이 재개된 데 대해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감사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사람들과 어깨 치이며 트럭에 실리면서도 나에게 인사하던 작은 오빠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며 "두 오빠 모두 나 때문에 희생당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오빠 둘 모두 죽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 있었을 텐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양씨는 "작은 오빠 유해 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며 "유해 발굴이 잘 마무리돼서 나 뿐 아니라 많은 4·3 유족들의 한이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제주공항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은 제주4·3평화재단이 수행해 오는 11월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유해 발굴 대상지는 제주공항 내 Δ뫼동산 인근 Δ남북활주로 서북쪽 Δ남북활주로 동북쪽 3곳이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제주공항에서 진행된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에서는 모두 388구의 유해가 발굴됐으며, 이 가운데 92구는 신원이 확인돼 유족에게 인계됐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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